‘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어려울까?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어려울까?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9.01.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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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큰마음 먹고 서울을 다녀왔다. 오로지 마르셀 뒤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몸이 좀 흥분되었다. 그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가져온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예술가들의 창의활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무엇을 하든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마르셀 뒤샹은 우리에게 ‘샘’(1917)이라는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프랑스인인 그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라는 입체파 회화작품을 1913년 미국에서 발표한 이후 먼저 유명해졌었다.

나는 도판으로 보았던 그의 중요한 작품들과 그의 일생을 한 장소에서 섭렵할 기회를 만났다. 그를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일생에 다시는 보기 어렵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서울까지 간 것이었다.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뭐 여기저기 찾아보면 그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그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의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그의 일생, 작가로서의 삶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며 변화를 추구해온 작품의 흐름을 보면서 또다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만나는 김에 다른 작가들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돼지저금통, 플라스틱바구니, 풍선, 목침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되는 흔하고 저렴한, 때로는 버려지는 것들로 꽃이나 숲을 만드는 최정화 작가, 오묘한 검정색으로 큰 붓을 푹 찍어내려 긋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윤형근의 작품에서 몇 가지 팁을 얻을 수 있었다.

가까운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들렀다. 조선시대 국왕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인구는 불과 3만7천명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도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의 무리들이 5~6명씩 팀을 이루었고 각각 선생님들과 함께 전시를 둘러보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여건상 가보지는 못했지만 덕수궁관에는 대한제국 시기의 회화, 사진, 공예 등 다양한 장르를 전시 중인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가 있고, 과천관에서는 지난 25년간 형성된 지구 차원의 문명을 주제로 사람들의 사는 방법에 대한 관찰, 기록, 해석하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을 접할 수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혜택이라 할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 말께 개관한 청주관의 1개 전시를 포함하여 4곳에서 25개의 전시가 마련되었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이런 전시를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광주에는 시립미술관이 있기는 하지만 감동스러운 전시는 어쩌다 한 번쯤 있는 둥 마는 둥이었다.

우리 광주는 오래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을 유치하겠다며 몸부림쳤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기회를 놓치곤 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일이니 올해까지 햇수로 20년째이다. 명색이 문화중심도시이고 미디어아트창의도시인 광주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다. 한번 실기하고 나니 이제 유치하는 일이 다른 도시와 경쟁체제가 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이 앞선다.

광주시는 이용섭 시장 취임 이후 국비 300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는 등 오는 2021년까지 4년 동안 국비 1180억원을 들여 광주관을 건립하는 안을 계획한 바 있다. 이 문제가 지난해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올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2020년 실시계획 가운데 신규사업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을 넣었다.

광주를 비롯해 전주와 진도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요청한 가운데 광주는 현재까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다. 왜 어려울까. 언론에 보도된 시의 기본계획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는 “광주관에는 기획·상설·역사관 등 전시관과 정원산책로·야외공연장 등 문화공간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브랜드 시설인 국제창작지원센터 조성, 교육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교육관”을 꾸민다고 했다. 이 정도 콘텐츠는 일반 미술관 수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광주시립미술관이 하는 콘텐츠를 확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쉽게 말해 ‘차별화’가 없었다. 광주관을 미디어아트와 영상미술 전용관으로 운영한다든가, 설치미술과 행위미술을 전문으로 한다든가, 환경과 정크아트를 중심으로 한다든가를 포함하여 색다르고 기발한 전시관 운영을 내세워야 할 듯싶다. 이 문제에 대해 지역의 무리들이 모여 한바탕 아이디어 경연대회라도 열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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