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시위라도 해야겠다
방독면 시위라도 해야겠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9.01.1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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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이 망했을 때 미국의 이베이에는 구소련의 별의별 물건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듬직해 보이는 군용 방독면이 있었는데, 아들은 이걸 주문하자고 졸랐다. 방독면이 소방서원이나 군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들의 말인즉 북한이 쳐들어와 화학전이라도 일어나면 이것 이상 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딱이라며 저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픽 웃고 말았다. 그런데 아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 다른 이유로 자주 후회된다.

지금 와서 그 방독면이 생각나는 것은 요 며칠 한반도를 덮은 살인적인 미세먼지 탓이다. 바깥은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짙은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고 있고 집 안에도 미세먼지 수치가 150마이크로미터를 넘어갈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살다 살다 처음 겪어보는 재난 사태다.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공포감으로 허우적거리며 지냈다.

창문도 열 수 없어 집안의 공기청정기, 아파트 천장의 팬, 화장실의 팬을 모두 틀어놓았는데 어디서 미세먼지가 집안으로 틈입해 오는지 여전히 수치가 100을 훌쩍 넘어 좀체 호전되지 않는다. 나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 위기에 빠졌을 때 119를 부르듯 누군가를 부르고만 싶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를 불러서 어떡한단 말인가.

말이 미세먼지라고 두루뭉술 부르지 실상은 초미세먼지, 황사, 부유물질이 범벅이 되어 있는 독성을 품은 화학물질이다. 그러니까 숨을 쉬면 독성 화학물질이 그대로 몸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들이마신 초미세먼지는 폐를 뚫고 들어가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간다.

무서운 것은 뇌로 흘러들어가서 자칫 뇌졸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미세먼지는 혈관으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혈류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혈구들을 뭉치게 해서 작은 핏줄들을 막아 뇌졸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차라리 폐가 공기정화기 필터처럼 먼지를 거르고 기능이 다하면 새 필터로 교환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생각다 못해 임시방편으로 집 안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냈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독성화학물질의 습격을 받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는데 실정은 되레 악화되고만 있다.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하늘이 미세먼지로 덮이는 가장 큰 이유는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그리고 중국발 미세먼지 탓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화력발전소 굴뚝이고.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조짐은 있을까. 거의 없다고 본다.

탈원전 정책으로 화력발전소 의존은 줄어들지 않고 자동차는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미세먼지는 한국 탓이다라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미세먼지가 크게 저감될 때까지만이라도 탈원전 정책을 보류하는 것이 좋을 성싶은데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마치 ‘탈원전만이 살 길이다’ 하는 확증편향 같은 신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중국의 황해 쪽에 있는 40기가 넘는 원전들 중에 하나라도 고장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원전은 기술발전으로 더 안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 중에는 원전보다 미세먼지가 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탈원전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

내가 이처럼 미세먼지에 대해 별나게 신경이 예민한 것은 천식을 앓고 있어서다. 천식에는 미세먼지가 매우 안좋다. 진짜로 미세먼지가 지독한 날은 기침을 자주 한다. 당장에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을 느낀다. 정부는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태국처럼 인공강우라도 뿌려 어떻게 좀 해야 한다.

앞으로 나는 마스크보다 센 국산 방독면을 구입해서 사용할 것을 고려중이다. 방독면을 쓰고 바깥에 나간다면 사람들이 날더러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 같긴 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국민 못해먹겠다’는 시위 효과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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