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의 외침
벽시계의 외침
  • 문틈 시인
  • 승인 2019.01.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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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벽엔 시계가 하나 걸려 있다. 전지를 한 개 넣어주면 몇 달은 살아서 재깍 재깍, 시침과 분침, 초침이 저들끼리 알아서 활동을 한다. 피자 모양을 한 이 시계는 내게 하루 할 일을 문득문득 상기시켜 준다. 12시를 가리키면 점심을 든다. 뭐야, 벌써 시침이 7자에 있네, 하고 저녁을 먹는다. 엉, 시계바늘이 밤 여덟시를 가리킨다.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나는 하루하루를 거의 시계에 맞추어가며 산다. 벽시계는 나의 시간 지킴이인 셈이다. 어떤 때는 열심히 글을 쓰다가 시계를 못본 채 그만 잘 때를 놓치기도 한다. 유심히 벽시계를 관찰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시간이란 게 가차 없이 빨리 간다는 것,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에 겁이 날 지경이다.

벽시계를 걸어놓고 처음에는 하루, 한 달 내내 재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듣기 싫어 거실에 내다 놓기도 했었지만 다시 그 소리를 들어야 내가 삶에 대한 정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 도로 들여놓았다. 방 안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보다 벽시계 소리가 들릴 때 고요가 훨씬 더 깊게 느껴진다.

섬뜩하도록 시간은 지체 없이, 끊임없이, 간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인데 마치 저 벽시계가 시간을 흘러가게 하는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누군가 안 보이는 손을 내밀어 저 벽시계의 시계바늘을 그때그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시간에 대해 말한다. ‘오는 세월은 더디 오지만 가는 날은 빨리 간다’고. 과거는 그것이 몇 십 년 전이든 몇 백 년 전이든 한꺼번에 쓸려 저 멀리 흘러가버린다. 10년 전을 소환해본다. 2009년. 바로 엊그제 같은데 공룡시대처럼 멀게 느껴진다. 그 소털 같은 세월은 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멀리로 한 순간에 흘러가버렸다.

이런 생각을 다가올 미래에 견주어보면 소름이 돋는다. 앞으로 10년 후 2029년.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릴 것인가. 생각할수록 오금이 저린다. 인간의 삶이란 시쳇말로 살았달 것이 없다. 시간 앞에서 속절없는 존재다. 시간은 온 듯 하다간 번개처럼 사라진다. 그 짧은 사이에 사람들은 마치 천년을 사는 것처럼 앙앙불락하고 살아간다.

시간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모든 생명이 측은하게 여겨진다. 대체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간에 끌려 다니는 내 삶이 마냥 불쌍하게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간을 초월할 수 없고, 시간에 매여 사는 삶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 앞에서 종당엔 모든 것이 무(無)가 되어버리는 시간의 법칙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은 이런 사고실험을 자주 한다. 시간의 그 어디쯤에 나를 세워놓고 과거로부터 그리고 미래로부터 나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가 실망스럽다고 조잘대고, 경제가 위기라고 불안해하고, 대체 이런 일들이 무슨 수작인가. 지금 나는 내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런 거대담론에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옳은가라고 과거와 미래는 내게 추궁하듯 묻는다.

나는 2019년을 다른 해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의한다. 과거의 10년을 올해 1년에 다 살듯이, 미래의 10년을 당겨서 1년에 다 살고 싶다. 내가 계획한 일들을 열심히 해내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벽시계가 시간이 ‘흘러간다’, ‘흘러간다’ 하는 외침소리를 한낱 기계소리로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지금 벽시계는 마치도 열반한 큰스님처럼 내게 시간에 대해 설법하고 있다. 시간은 가버린다, 아까도, 지금도, 이따가도. 심쿵한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시간이 금싸라기처럼 소중해진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 그 어떤 일이 되든 안되든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 여행자로서 말이다. 그러므로 새해가 주어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값진 선물이다. 벽시계를 보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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