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광주' 그곳의 역사는 무엇일까?
'남광주' 그곳의 역사는 무엇일까?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9.01.01 10: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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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민속박물관, 문헌·현장조사·구술 등 수록

광주사람들의 기억에서 벌써 사라져가는 것 중의 하나가 남광주역 그리고 학동8거리이다. 좌판과 해산물 시장으로 각광받았던 역은 사라졌고 학동8거리도 아파트단지로 바뀌면서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옛 남광주역과 남광주시장, 학동 팔거리, 백화마을 등 남광주의 역사를 다룬 최초의 조사보고서가 최근 발간되면서 옛 문화 콘텐츠에 대한 활용을 새롭게 접근하는 것도 문화광주의 할 일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광주시립민숙박물관은 문헌과 현장조사, 구슬 등을 통해 총 3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간, 남광주의 실체를 분석하고 그동안 잘못 알려졌거나 감춰진 사실을 발굴했다. 

특히 남광주역과 남문로, 학동 배수지 등 8곳의 명소를 통해 남광주의 변천사를 다뤘다. 남광주가 있었기에 철도, 도로, 상수도 등 광주의 현대도시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과정을 살피고 있다. 

특히, 현재 조선대 장례예식장이 들어선 언덕이 원래 활터가 있었던 데서 ‘남사정(南射亭) 언덕’이라 불렸던 곳임을 밝히고, 1920년 처음 광주에 수돗물이 공급됐을 당시 이곳에 정수장과 배수지가 생겼던 과정부터 이후 벌어진 광주 상수도의 발전사를 들려준다.

또 여러 자료를 비교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남광주에 대한 ‘상식’을 흔드는 얘기도 들려준다. 경전선 철도의 산물인 남광주역이 남광주시장의 출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광주시장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1970년부터였다는 사실을 국가기록원과 광주시 행정자료, 당시의 지역일간지를 통해 검증했다.

그동안 학동 팔거리(현 학동 휴먼시아 2단지)는 1930년대 도시빈민들의 집단거주지로 조성됐다는 사실과 동네의 독특한 생김새 정도로만 주목받는데 그쳤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이 동네 운영 방식과 관련해 일제가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도면밀하게 통제하고 감시하려고 했던 정황들을 밝혀냈다.  
보고서에는 오랫동안 남광주가 ‘바람 부자’, ‘먼지 부자’, ‘물 부자’ 등 세 부자가 있었다고 알려진 이야기도 들려준다.

일제 때 호남은행장을 지낸 현준호 씨가 일종의 개인별장으로 학동삼거리 근처에 지은 ‘무송원’ 건물에 얽힌 일화, 1930~40년대 광주사람으로는 드물게 영화제작자로 명성을 올린 최남주 씨의 인생역정도 함께 들려준다. 무엇보다 보고서 말미에는 남광주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전하는 강인하면서도 애달픈 삶의 육성이 수록돼 있다.

이번 보고서는 외부 전문가 3명에게 의뢰해 5개월에 걸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박물관이 원고를 최종 집필하는 방식을 통해 발간됐다. 박물관은 단순히 조사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사진, 고문헌, 지도, 옛 일간지 등을 통해 수집한 결과까지 담아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보고서는 지난 한해 박물관 활동상을 기록한 ‘연보’와 함께 전국 주요 도서관, 박물관 등 학술기관에 배포됐다. 

조만호 박물관장은 “남광주는 광주 현대사의 얘기로 가득한 곳이다. 이번 보고서는 그동안 잠들어있던 남광주의 얘기들을 흔들어 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광주 역사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늘 새롭게 재해석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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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의 2021-07-02 16:02:46
근데 남광주 시장이 왜 남구가 아닌 동구에 있나요?
예전엔 광주가 작았나요? 그래서 동구의 남쪽에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