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신창동유적과 시민고고학' 2천년을 넘다
조현종, '신창동유적과 시민고고학' 2천년을 넘다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8.12.26 1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창동유적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시민과 더불어 활용방안 모색"
이 아름다운 유리옥!(광주 신창동유적 출토)
이 아름다운 유리옥!(광주 신창동유적 출토)

2천년 전 광주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을까.

생활의 편의성은 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것도 같다.

지금만 첨단시대가 아니라 2천년 전에도 첨단시대가 있었다. 당시의 생활로 봐서는 그만큼의 혁신적인 문물을 겪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2천년 전의 세계적인 농경복합유적인 광주 신창동유적에 대한 시민고고학 차원의 학술강연회가 28일 광주 광산구 신창동주민센터에서 열린다.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이 최근 광주고고문물연구소를 개소한 기념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우리 지역의 옛 문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옹관묘유적으로 널리 알려진 광주 신창동유적은 1992년 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확인된 저습지 속에 숨어 있던 두꺼운 벼껍질층과 함께 농구와 악기를 포함한 경이로운 목기와 칠기, 다양한 토기류를 발굴한 바 있다.

신창동유적은 그만큼 가치를 지녀 국가 사적 제 375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크고 작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기원전 1세기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생산과 생활, 매장유적이 망라된 다양한 생활유물이 발굴되었다.

조 전 관장은 지금까지 26년 동안 신창동유적 하나에 모든 연구역량을 쏟아부었다.

‘2천년 전의 타임캡슐’이라 할 정도로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저습지학회에도 등재되어 세계적인 유적으로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은 장기간의 조사와 연구의 집적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시관과 현장체험을 비롯한 시민을 위한 시설이 전무한 상태다. 국내외의 많은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와 시민들은 신창동유적의 겉모습만 봤을 뿐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조 전 관장은 최근 광주고고문물연구소를 열고 이처럼 관심이 있어야 할 유적 등에 대해 시민과 함께 고고문물의 연구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해 신창동유적만을 연구하고 접근할 신창동포럼을 결성했다.

고고학적으로 축적된 학문적인 자료의 대중적 확산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국내외 관련유적의 답사와 이해, 신창동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심화시키는 시민고고학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향후 설립될 전시관의 기본적인 방향과 활용 등과 관련된 모델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특별강좌는 제1부, <신창동유적과 시민고고학>은 26년간 신창동유적을 조사하고 연구한 신창동고고학의 최고권위자인 조현종 박사가, 제2부, <신창동유적과 시민네트워크> 는 광주시의회 김광란 시의원이 발제를 맡았다.

조 전 관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연구와 강연활동이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전개되어 장기적으로는 광주에 세계적인 고고학연구소의 하나로서 <신창동학연구소>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광란 의원은 “2000년전 타임캡슐이라 불리는 신창동 선사유적지 전시관, 체험관 건립과정에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향후 운영·관리에서도 시민들의 주도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강좌를 계기로 신창동 선사유적지 활용을 위한 시민모임이 결성되어 유적지가 주민과 함께 녹아드는 우리들의 역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