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6) 낙조(落照)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6) 낙조(落照)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2.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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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구나[2]

박문수가 자신의 몸으로 ‘의(義)’를 중시했다면, 허균은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으로 통해서 ‘의(義)’를 중시했다. 면암이 민의 주도로 ‘의’를 중시했다면, 어사는 관의 주도로 ‘의’를 중시했다. 어사로 활동했을 때도 그랬었지만 조정에 들어가 국사를 논의할 때도 그는 ‘의’를 중시했다. 등과시는 시상도 역시 명시겠다. 소나무 그림자는 짧고 아내의 쪽빛 그림자는 나지막한데, 고목도 늘 푸른 연기에 스며있을 때 초동의 풀피리를 상상해서 읊었던 율시 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落照(낙조)[2] / 기은․어사 박문수

놓아서 먹여 기른 풀밭 소의 긴 그림자

망부대위 아내의 쪽 나지막한 그림자는

고목의 연기에 서려 초동피리 환영이네.

放牧園中牛帶影      望夫臺上妾低鬟

방목원중우대영      망부대상첩저환

蒼煙古木溪南路      短髮樵童弄笛還

창연고목계남로      단발초동롱적환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구나(落照)로 번역해본 율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놓아먹인 풀밭의 소 그림자는 길고 / 망부대 위엔 아내의 쪽 그림자 나지막하구나 // 개울 남쪽길 고목은 푸른 연기가 가득 서려 있고 /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서산을 넘는 저녁놀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이어진 시인이 읊은 시심은 [지는 해가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 나루터를 묻는 길손은 말채찍이 급하고 / 절로 돌아가는 스님도 지팡이가 바쁘구나]라고 쏟아냈다.

위 과체시를 심사한 심사위원은 귀신이 쓴 것이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시인은 천연덕스러운 자연에 대한 감상적 시작품의 넉살을 매만진다. 해가 넘어가니 풀을 뜯고 있는 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망부대에서 시인을 기다리는 아내의 그림자가 나지막하다고 느꼈다. 여기까지는 귀신이 원수를 갚아 달라고 일러준 답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는 개울가에서 한 세월을 다 보낸 고목이 젊었을 때의 기상을 품고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고 상상하면서 화자 자신을 목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시심을 일으키면서 맺는다. 풀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 더벅머리 초동의 낭만적인 표현은 낙조의 풍경 한 마디를 한 폭의 그림에 곱게 담았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풀밭의 소 그림자 길고 아내 쪽 그림자 낮네, 고목 연기 가득 서려 초동은 피리를 불며’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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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50년 수어사를 역임한 뒤 세손사부 등을 지냈고, 1751년 예조판서가 되기도 했다. 1752년 왕세손이 죽자 내의원제조로 책임을 추궁당하여 멀리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그러나 이듬해 풀려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한자와 어구】

放牧: 방목, 놓아먹임. 園中: 정원 가운데, 풀밭. 牛帶影: 소 그림자가 길다, 곧 석양이다. 望夫臺: 망부대. 上: 위에. 妾低鬟: 아내의 쪽 그림자. // 蒼煙: 푸른 연기. 古木: 고목. 溪: 시내, 개울. 南路: 남쪽 길. 短髮: 더벅머리. 樵: 땔나무. 童: 아이. 弄: 재미있게 놀다. 笛還: 피리를 불며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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