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5) 낙조(落照)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5) 낙조(落照)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2.1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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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채찍이 급한데[1]

어사가 떠난 지 불과 260여 년 전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자취는 넓고 크다. 가는 곳 마다 의를 중요시 했고, 떠나는 곳마다 다시 보고자 했다. 그가 약자들 편에 섰기 때문이다. 어사만 나타나면 산천초목도 무서워 벌벌 떨었다는 일화와 설화까지 남겼다. 어사의 등과시에 대한 일화는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자연을 보면서 그렇게 절절하게 묘사를 했는지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는 저녁놀을 보면서 상상하여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落照(낙조)[1] / 기은․어사 박문수

지는 해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더니

찬 하늘 까마귀는 흰 구름 속 사라진다.

말채찍 길손 급하고 지팡이가 바쁘네.

落照吐紅掛碧山      寒鴉尺盡白雲間

낙조토홍괘벽산      한아척진백운간

問津行客鞭應急      尋寺歸僧杖不閒

문진행객편응급      심사귀승장불한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채찍이 급한데(落照)로 번역해본 율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지는 해가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누나 //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채찍은 급하기만 하고 / 사찰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가 바쁘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서산을 넘는 저녁놀1]로 번역된다. 시인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날이 저물었다. 주막에 머물러 잠을 자는데 꿈에 한 젊은이가 나타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면서, 이번 과제와 1~6구까지 답안을 일러 주었다. 과연 그가 과장에 나갔더니 젊은이가 일러 준 대로 기억되어 답안을 쓰고 7~8구는 생각하여 완성하여 병과(3등)로 합격했다.

시인은 자연에 빗대며 지는 해를 음영했다. 지는 해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있으니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고 했다. 자연을 적절하게 음영하는 시적인 상상력이 시상의 얼개에 잘 짜여 있음을 본다.

화자는 길손의 말채찍과 스님의 지팡이를 대비하는 시상을 전개한다.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말채찍은 급하기만 하고, 사찰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가 바쁘다는 전개과정이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놓아먹인 풀밭에 소 그림자가 길고 / 망부대 위엔 아내의 쪽 그림자가 나지막하구나 // 개울 남쪽길 고목은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고 있구나]라고 했다. 초동이 돌아오는 그림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지는 해는 붉은 빛을 까마귀 흰 구름 사이, 길손 말채찍 급하고 스님 지팡이 바쁘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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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39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었고, 1741년 어영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함경도에 진휼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다 기민을 구제했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송덕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한자와 어구】

落照: 지는 해. 吐紅: 붉은 빛을 토하다. 掛碧山: 푸른 산이 걸려있다. 寒鴉: 찬 하늘 까마귀. 尺盡: (자질하며)사라진다. 白雲間: 흰 구름 사이. // 問津: 나루터를 묻다. 行客: 길손. 鞭應急: 말채찍이 급하다. 尋寺歸: 절을 찾아 돌아오다. 僧杖: 스님의 지팡이. 不閒: 한가롭지 않다, 곧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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