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4) 상월(賞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4) 상월(賞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2.1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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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이나 될까

사랑이 너무 깊으면 그 사랑에 흠뻑 취하는 수가 많다. 사랑이 깊어도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때 즐거울 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련히 그리워지는 아름다움으로도 남긴다. 그리고 미련없이 떠난 시흔(詩痕)도 만난다.

시인은 남편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한다. 그리고 남편의 출세 가도를 위해 혼신을 다 바친다.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판단 하에 달을 보며 회한에 젖으며 목숨을 다하려고 다짐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賞月(상월) / 일타홍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따라 저리 밝고

한 조각의 고운 달빛 만고에 정다운데

백년의 슬픔과 환희 느끼는 이 몇인가.

亭亭新月最分明      一片金光萬古情

정정신월최분명      일편금광만고정

無限世間今夜望      百年憂樂幾人情

무한세간금야망      백년우락기인정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 명이나 될까(賞月)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일타홍(一朶紅:?~?)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저리 밝고 / 한 조각 달빛은 만고에 정답기만 하여라 // 넓고 넓은 세상인데 오늘 밤 한 줄기 달을 보면서 /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달을 감상함]으로 번역된다. 일타홍은 심희수에게는 처음 맞이하는 부인이지만, 정실이 되지못했기에 양반집 규수 노극신(盧克愼)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도록 주선한다. 일타홍과 정실부인은 다정했고, 홀로된 시어머니에게는 극진한 효부였다. 이런 미담이 알려져 심희수가 이조낭관(郎官)일 때 선조임금을 배알하는 광영의 자리에서 남편의 승진을 간청했다.

시인은 비록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소실인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하고, 또 남편을 오랫동안 차지하여 정실에게 죄스러워 자살을 결심하며 시 한 편을 남긴다. 하늘에 우뚝 솟은 저 초승달 오늘 따라 어찌 저리 밝는가 하면서 한 조각 달빛은 만고에 정답기만 하다고 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삶의 질곡이 사무친 나머지 달을 보며 시 한 편을 남긴다.

달은 곧 시적자아의 밝음을 노래한 것이다. 비록 너 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길로 한 줌의 흙이 되지만, 유난히 밝은 달은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회한(悔恨)한다. 종장 처리의 가구(佳句)를 만나면서 인간은 바르게 살아야 함도 느낀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초승달은 저리 밝고 만고에 정다워라, 오늘 밤에 달을 보며 백년 우락 몇 명쯤일까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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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2참조] 일타홍(一朶紅:?~?)으로 여류시인이다. 심희수와의 깊은 관계 속에 애절함이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인에 대한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亭亭: 우뚝 솟다. 新月: 초승달. 最分明: 가장 밝다, 가장 분명하다. 一片: 한 조각. 金光: 달빛. 萬告情: 만고에 정답다, 오랫동안 정답다. // 無限: 무한, 넓고 넓다. 世間: 세상. 今夜: 오늘밤. : 바라보다. 百年: 백년. 오랜 세월. 憂樂: 슬픔과 근심. 幾人: 몇 사람. : 느끼다,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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