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억 ‘최흥종 기념관’과 무관심 ‘임방울 생가터’
18억 ‘최흥종 기념관’과 무관심 ‘임방울 생가터’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12.06 0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흥종 목사 기념관이 18억원을 들여 남구 양림동에 짓고 있다. 지난 5월에 완공 목표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개관하지 못했다. 양림동 근대문화 공간 속에서 3.1운동과 빈민구제, 선교활동, 교육운동 등에 헌신한 기여한 그의 족적을 남기려는 취지이다.

양림미술관과 유진벨 기념관 옆으로 들어서는 ‘오방기념관’은 지상 1층, 연면적 451㎡ 크기이다.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 기념관 옥상으로는 잔디를 꾸며 옆에 있는 양림미술관과 유진벨 선교기념관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오방 최흥종 선생은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 오웬(Clement Owen)과 만나 광주지역 기독교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후일 우일선(Wilson) 선교사와 포사이트(Forsythe) 선교사 등을 도와 한센병 치료에 평생을 헌신했다. ‘광주의 아버지’였던 그는 극도의 가난과 병마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에겐 하나밖에 없던 친구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살신성인하던 선교사들을 통해 접한 기독교는 그의 삶의 궤적을 바꿔버렸다. 17세 때부터 천혜의 고아로 건달, 깡패, 싸움꾼에서 가난과 무지와 질병에 시달리고 천대받던 사람들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이 생겼다. 그때부터 그는 삶의 이유를 ‘나’가 아닌 ‘남’으로 바꿨다고 한다.

애국지사로 3·1운동 당시 전남지역 총책이었으며, 만세시위 주도로 3년에 걸친 옥고를 치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광주 YMCA 설립과 해방 후 결핵환자와 나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빈민구제 활동에 전력을 쏟았다. 신간회 전남지회장과 해방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회장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사회운동가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1962년 최흥종 선생의 이러한 업적을 기려 애국훈장 수여, 1986년과 1990년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양림동에는 유진벨 선교사 기념관, 조아라 여사 기념관에 이어 이번에 오방 최흥종 목사 기념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어 광주정신의 한 축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광주지역 사회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친 이들을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광주는 문화도시를 내세우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도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의 대표적인 소리꾼이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임방울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 아이돌’로 음반 120만장 판매기록을 세웠다는 임방울을 기리기 위해 임방울국악진흥회가 전국대회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임방울의 생가터는 어찌한가 묻고 싶다. 2012년 무렵 광산구 도산동주민자치위원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보해양조가 공동으로 주관해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방울소리 고장’ 만들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고작 생가터 주변 돌담길에 국창 임방울 선생 이야기를 다룬 벽화 그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표지석 하나 달랑 세우는 정도에 그쳤다.

지난 4월 지방선거 때 이곳을 찾았던 한 광산구청장 후보는 이렇게 글을 남겼다. “국창 임방울 선생의 생가라는 표지판을 보고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찾아갔는데… 세상에 ‘국창’이라는 말이 궁색하게 생가는 표지판만 있고, 문은 꼭 닫혀있고, 성의없는 벽화그림만 있었다. 전국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반드시 생가터를 제대로 복원해서 교육의 장으로,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서 지역의 일자리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문화산업의 마중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광산구 도산동 679번지. 임방울 생가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본채는 허물어져 없어지고 폐허가 된 사랑채와 담장만 남아 있다. 그나마 땅주인은 타 지역에 살고 있는 4명 등 6명의 공동소유이다. 광주시도, 광산구도 이 땅에 대해 무관심했다.

양림동의 한희원 선생은 이렇게 지적했다. “시인 김현승과 박용철, 화가 오지호 등의 예술인의 문학관과 미술관이 없어 예향으로서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광주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통영에 시인 유치환문학관, 김춘수유품전시관, 소설가 박경리문학관, 화가 전혁림미술관, 음악가 윤이상음악관이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뿌리정신을 기리고 찾는데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광주는 문화도시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광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예술인과 의인을 기리는 장소를 조성하지 않거나 그들을 기리는 장치들을 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임방울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광주와 인연을 맺었던 김환기, 손재형, 천경자, 조방원, 김옥진, 김형수, 이상재, 이창주, 문장호, 신영복, 배동신, 최쌍중, 오승우, 진양욱, 국용현, 최종섭, 탁연하, 김찬식, 김영중, 조제현, 양두환, 조판동, 최한영, 서희환, 하남호, 구철우, 안규동, 조기동, 판소리의 한애순과 공대일 그리고 문학, 음악이나 무용, 연극 분야에서도 많은 이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다.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당장 기념관이 어렵다면 그들을 기억하는 장소에 표지판이나 표찰 등을 설치하여 곳곳에 남은 흔적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