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지가(守貧之家)의 문선생
수빈지가(守貧之家)의 문선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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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지가(守貧之家)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주인장 문 선생이 반긴다.
호들갑이 없다.

질 그릇 만드는 흙이라고 하면서 한 무더기의 흙을 내놓는다.
어제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만들었다고 국 그릇 같은 것을 보여준다.
작은 놈과 나도 뭘 만들어볼까 하고 한 시간 정도 매달렸다.
그래도 결국 실패다.
아들 녀석과 난 좀 부끄러워 어물쩍 했더니, 내색 없이 점심 준비에만 바쁘다.

문 선생은 나무꾼 시인이다.
유일한 아들 윤기란 놈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생활조사푠가 뭔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윤기 엄마는 한국통신에 근무한다. 그래서 집안 일은 거의 문 선생이 전담하는 듯 싶다. 난 문 선생이 끓여주는 닭죽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내어놓는 녹차도 즐긴다. 차의 향과 맛을 모르는 난 곡차를 재촉할 때가 많다. 그러면 그는 소주에다 녹차 잎을 넣은 것을 두말 없이 가져온다. 그런 날은 온 몸이 다 푹 젖을 정도로 마신다.

오늘은 향을 피운다.
향내가 흔하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도 없이 좀 좋은 것이란다. 그런데 웬 향?
눈치를 챘나보다. 부담스런 일에 시달리다가 겨우 짬을 내어 나온 나들이이기에 곡차 생각이 간절했다. 더구나 문 선생네 토실토실한 닭도 잡고, 홍합도 삶고, 안주거리가 두둑한데 어찌 그냥 갈꼬! 이것이 풍류 아닌가?

그런데 문 선생은 풍류라는 말을 싫어한다.
삐치기 잘하는(?) 그가 긴 말을 하는 경우란 곡차의 양이 좀 지나칠 때뿐이다. 이럴 땐 풍류에 대한 그의 싫은 내색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의 거침없는 독설은 한마디로 소위 '살롱(saloon)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모아지는 듯 싶다. 계몽주의 시대의 부르주아 계급이 보여주었던 교양 위주의 사교적 유희에 대한 혐오인 것도 같다. 말하자면 우리의 풍류가 전통적인 체통은 내팽개치고 티내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꼴불견에 대한 일갈(一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 나나 취기가 어리면 잘 쓰는, "꼴값 떠네!"이다.

얼마 전 근교에 오래된 농가를 마련하였다.
이 고가(古家)를 고치는 일을 문 선생이 대신 맡아서 해주고 있다. 150년 가까이 되고 사람이 살지 않은 지 10년이 넘은 이 집을 다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낡은 집을 고치는 일보다 더 힘드는 것은 말쑥하고 세련된 방문객들의 태도다. 병원장인 고교동창은 오자마자 대뜸 "싹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새로 짓지"하며 눈을 흘긴다. 화장실이 아닌 뒷간을 짓겠다는 말을 듣고는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미친 놈"한다. 갑자기 망치 소리가 크다고 느꼈을 뿐 그 때는 몰랐다. 친구들이 가고 난 뒤 문 선생이 물었다.

"무슨 원장이요?"
"병원장"
"무슨 얼어죽을 병원장, 딱 업자처럼 생겼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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