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2) 춘설유감(春雪有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2) 춘설유감(春雪有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1.28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물을 보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말아야 할지니

봄은 화창한 햇볕 받은 새싹이 움터 자람에서도 오지만, 마음의 봄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고국에 있을 때의 봄과 타국에 있을 때 봄은 많이 다르다. 그것이 행여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 봄과 볼모로 잡혀 있는 처지의 봄은 또 달랐을 것이다. 문약한 명(明), 활을 잘 다루는 청(淸)을 오가는 마음에서 맞이하는 봄은 달랐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를 곁에 하고 맞이하는 봄을 향해 외물(外物)에 물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雪有感(춘설유감) / 지천 최명길

이역에서 맞은 봄은 봄인 줄 모르겠고

아침에 내린 눈꽃 놀라면서 바라보는데

외물에 흔들리지 말자, 내 몸 안에 봄기운.

絶域逢春未覺春      朝來驚見雪花新

절역봉춘미각춘      조래경견설화신

莫將外物爲欣慼      春意分明在此身

막장외물위흔척      춘의분명재차신

 

외물을 보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말아야 할지니(春雪有感)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1586~164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이역에서 맞는 봄은 봄인 줄도 모르겠더니만 / 아침에 내리는 눈꽃에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네 / 장차 외물을 보고 기쁘지도 또는 슬프지도 말아야 할지니 / 봄기운은 분명히 내 몸 안에 있으리니]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봄눈을 보며 느낌이 있음]으로 번역된다.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에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정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항복했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와 강화를 주장하는 주화파와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척화파가 대립하게 되었는데, 조정은 주화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이후 청나라로 잡혀가 죽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시인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낸다는 일로 청나라로 잡혀가 심양에 억류된 척화파였다. 이때에 지어진 작품이다. 이역에서 맞는 봄은 봄인 줄도 모르겠더니만, 아침에 내리는 눈꽃에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다고 했다. 심양은 북쪽의 내륙으로 추운 지역이다. 절기상 봄이 왔는데도 온화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봄눈까지 내려 도무지 봄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게 한다.

화자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억류된 몸으로 모든 것이 절망스럽지만 따뜻한 봄의 기운을 바깥의 환경에서 찾지 않고 마음속에서 찾아내어, 눈 내리는 가운데서도 진정한 봄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외물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봄이야 말로 진정한 봄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이역만리 봄 아니고 눈꽃 깜짝 바라보네, 외물보고 놀라지 말자 봄기운이 내 마음에’라는 상상력이다.

================

작가는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1586~1647)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지천(遲川), 창랑(滄浪)이다. 병자호란 때 화평을 주장하고 항서를 써서 청나라에 항복했다. 청군이 물러간 뒤, 우의정으로 흩어진 정사를 수습하는 데 힘썼다. 이어 좌의정이 되고 다음 해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絶域: 이역. 逢春: 맞은 봄. 혹은 봄을 맞이하다. 未覺春: 봄인 줄도 모르다. 朝來: 아침에 내리다. 驚見: (깜짝) 놀라서 바라보다. 雪花新: 눈꽃이 매우 새롭다. // 莫將: 앞으로 ~하지 말라. 外物: 외물. 爲欣慼: 기쁘고 슬프다, 기쁘고 슬프게 되다. 春意: 봄기운. 分明: 분명, 분명히. 在此身: 내 몸에 있으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