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0) 정부원(征婦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0) 정부원(征婦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1.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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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우리 역사 둘레를 보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한번 전쟁이 벌어졌다 하면 전쟁이 끝나야 돌아올 수 있었다. 조정에서 임명하는 무반(武班)을 중심으로 군수뇌부가 짜지면 상인(常人)들은 개병제, 또는 강제로 군인이 되었지만 무기의 허술함도 지적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회적인 제도 하에서 강제로 끌려가 군인이 된 남편이 죽은 줄로 모르고 겨울옷을 손질하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征婦怨(정부원) / 석주 권필

서릿발 내리고 기러기 떼 남쪽으로

금성의 포위망은 뚫리지는 않았는데

아내가 죽은 줄 몰라 겨울옷만 다듬이질.

交河霜落雁南飛      九月金城未解圍

교하상낙안남비      구월금성미해위

征婦不知郞已沒      夜深猶自擣寒衣

정부불지랑이몰      야심유자도한의

 

군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征婦怨)로 제목을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교하에는 서리발이 내리고, 기러기 떼는 남으로 날아가는데 / 구월의 금성에는 포위망이 풀리지를 않는구나 // 군인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 밤늦도록 겨울옷 다듬고 다듬이질만 하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전쟁 떠난 군인 아내의 원망]으로 번역된다. 시인은 광해군의 비 류씨 동생 등 외척들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를 지었다. 1612년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된 조수륜의 집을 수색하다가 이 시를 그가 지었음이 발각되어 친국(親鞠)을 받은 뒤, 해남으로 유배된다.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다다랐을 때 행인이 주는 동정술을 폭음하다가 다음날 운명을 달리한다.

서릿발이 내리고, 기러기 떼가 남으로 나는 늦가을인데도 포위망이 뚫리지 않는 전쟁터 금성에는 지금도 총성은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의 역사로 보아 1000번의 외침을 받았다는 발표를 보면 나라를 지킨 군인이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요즈음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대(除隊)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시는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노정하고 있다.

화자는 여인은 안타까운 심정의 한 보따리를 덥석 풀어 놓는다. 남편이 전쟁 중에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여인은 밤늦도록 추위에 입을 겨울옷을 다듬이질 하고 있다는 섦은 심정을 작가는 표현하고 있다. 안타깝다 못해 애통터질 일이다. 이것이 폐쇄적 조선사회 현실이었고, 남편을 그리는 조선여심(女心)의 한 단면이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교하 서리 기러기 떼 남쪽 포위망 풀리지 않네. 남편 죽은 줄도 모르고 겨울 옷 다듬고 다듬이질만’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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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목릉성세로 대표되는 당대 문단에서 동악 이안눌과 함께 양대 산맥의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젊었을 때에 강계에서 귀양살이하던 정철을 이안눌과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交河: 파주시에 있었던 지명. 霜落: 서리가 내리다. 雁南飛: 기러기가 남으로 날다. 九月: 구월. 金城: 금성. 샛별이라고도 함. 未解圍: 포위망이 풀리지 않다. // 征婦: 군인의 아내. 不知: 알지 못하다. 郞已沒: 남편이 이미 죽다. 夜深: 밤 늦도록. 猶自擣: 홀로 다듬이질하다. 寒衣: 겨울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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