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8) 고란모경(高蘭暮磬)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8) 고란모경(高蘭暮磬)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3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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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맑은 풍경소리만이 구름 밖을 날아가는구나

안타까움은 흥망성쇠의 아픔을 말해주는 백제 역사가 거의 전부가 소실되고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 역사의 흔적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위례→웅진→사비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죽고 죽어가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중원을 다스린 백제의 역사가 우리 역사보다는 ‘중국25사’와 ‘일본서기’에 나타나 있건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 백제 역사는 의자왕, 계백, 삼천궁녀 정도가 고작이다. 낙화암과 고란사를 찾아 애달프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高蘭暮磬(고란모경) / 상촌 신흠

긴 연무 모래톱에 초동목수 전조 알고

산 스님 혼자만이 흥망성쇠 상관 않고

드맑은 풍경소리만 구름 밖을 날아올라.

水闊煙深沙渚遙      祗今樵牧認前朝

수활연심사저요      지금초목인전조

山僧不管興亡事      淸磬一聲雲外飄

산승불관흥망사      청경일성운외표

 

드맑은 풍경소리만이 구름 밖을 날아가는구나(高蘭暮磬)로 번역하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강 폭은 넓고 연무만이 긴 저 멀리 모래톱이 있는데 / 지금까지 초동목수가 전조였음을 알고 있네 그려 // 스님은 국가의 흥망과는 아무 상관 없다던가 / 드맑은 풍경소리만이 구름 밖을 날아가는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고란사 저녁 풍경 앞에서]로 번역된다. 신흠의 문학론에는 현대인들도 깊이 새길만한 대목이 있다. 그는 시(詩)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문(文)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하면서 ‘시’와 ‘문’이 지닌 본질적 차이를 깨닫고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에서는 객관적 사물인 ‘경(境)’과 창작주체의 직관적 감성인 ‘신(神)’의 만남을 창작의 주요 동인으로 강조했음이니 깊이 새길 말이다.

그래서 시인의 영감, 상상력의 발현에 주목하는 시론은 당대 문학론이 대부분 내면적 교화론(敎化論)을 중시하던 것과는 구별됨에 따라 현대인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강 폭은 넓고 연무가 긴 저 멀리 모래톱에, 지금까지 초동목수가 전조였음을 알고 있다고 했다. 고란사를 찾는 시인에게는 그 감회가 특히 남달랐음이 분명했음을 시문에서 찾게 된다.

화자는 백마강 줄기가 전조인 백제였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드맑은 풍경소리만이 구름 밖을 날아간다고 했다. 지나간 역사와 흥망성쇠를 모르는 듯 고란사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풍경 소리만이 아무 거리낌 없다는 듯 구름 밖을 훨훨 날아가고 있다는 상상력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연무만이 긴 모래톱인데 초동목수 전조를 아네, 국가흥망 상관 모른 스님 풍경소리만 구름 밖에’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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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89년 춘추관 관원에 뽑히면서 예문관봉교, 사헌부감찰,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동인의 배척으로 양재도찰방에 좌천되었으나 전란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한자와 어구】

水闊: 강 폭이 넓다. 煙深: 연무는 깊다. 沙渚: 모래톱. 遙: 멀다. 祗: 조사(措辭). 今: 이제. 樵牧: 초동목수. 認前朝: 전조였음을 알고 있다. // 山僧: 산승. 不管: 상관없다. 興亡事: 흥망의 일. 淸磬: 풍경 소리. 一聲: 한 소리. 곧 풍경소리. 雲外飄: 구름 밖으로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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