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7) 이천(伊川)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7) 이천(伊川)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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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

가난했던 현실이 너무 많았다. 배를 움켜쥐고 날마다 날품팔이를 하던지, 남의 처자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던 게 조선 중기의 현실이었다. 관리들의 수탈은 더욱 심했다. 서민들의 집을 들이 닥쳐 있는 대로 빼앗아 갔다. 오전에 왔다가 다시 오후에 오는가 하면 돈이며 물건이며 모두 빼앗아 갔다. ‘남편 겨울옷을 짜고 있는데 베틀에 메여있는 베를 잘라 관리에게 주고 나니, 오후엔 다른 관리가 와서 세금 명목의 물건을 내놓으라하네’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伊川(이천) / 어우당 유몽인

아낙이 베 짜면 뺨에 가득 눈물 괴고

낭군 위해 겨울옷을 촘촘히 짜렸더니

아침에 관리에 건네 다른 관리 찾았네.

貧女鳴梭淚滿腮      寒衣初擬爲郞裁

빈녀명사루만시      한의초의위랑재

明朝裂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來

명조열여최조리      일리재귀일리래

 

가난한 아낙의 눈물만 뺨에 가득하고(伊川)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난한 아낙이 베를 짜니 눈물이 뺨에 가득하고 / 겨울 옷, 처음에는 낭군 위해 짜려고 했었구나 // 아침에 짜던 베를 칼로 끊어서 관리에게 건넸더니 / 한 관리가 돌아가자 다른 관리가 또 찾아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이천에서 본 여인이]로 번역된다. 강원도 이천에서 있었던 사실을 시문으로 읊었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을 음영한 것이 아니요, 감회를 음영한 것이 아니고 지방 관리들의 수탈의 모습이란 그림을 그렸다. 조선 사회가 극도로 피폐하여 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정도였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적나라한 조선 후기의 생활상이 보인다.

위 시에서 시인의 생각을 적는 대목은 한 마디도 없다. 낭군을 위해 옷베를 짜고 있다는 것 외에는 들은 내용도 없다. 모두는 본 내용을 서술 형식으로 시문을 썼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시인의 간곡한 염원이라면 수탈의 비참함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당시의 생활상에 대한 굳건한 의지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

화자는 처절한 여인의 비통함을 한 마디로 쏟아내고 있다. 남편의 겨울옷을 짜고 있던 옷베다. 그런 정성으로 짜던 베를 끊어서 관리에게 주고 났더니, 오후에는 또 다른 관리가 찾아왔다는 대목에서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하는 시적 묘미를 살려 내는 효과를 부린다. 시는 안타까움과 눈물의 비빔밥이라는 어느 시인의 통회를 듣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베를 짜는 아낙 눈물 낭군 위해 짜렸더니, 아침 관리가 잘라가자 저녁 관리가 또 와서 달라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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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다 1623년 유응경이 무고해 국문을 받고 사형되었다. 서인들이 중북파라고 반대세력으로 몰아 죽인 것이었다. 정조 때 신원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한자와 어구】

貧女: 가난한 아낙. 鳴梭: 베를 짜다. 淚滿: 눈물이 가득하다. 腮: 뺨. 寒衣: 겨울 옷. 初: 처음에는. 擬: ~하려고 하다. 爲郞裁: 낭군 옷 짜다(만들다) // 明朝: 밝은 아침에. 裂與: 끊어서 주다. 催租吏: 곡식 재촉하는 관리. 一吏: 한 관리 纔歸: 겨우 돌아가다. 一吏來: 한(다른) 관리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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