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상자 텃밭
귀여운 상자 텃밭
  • 노영필 철학박사
  • 승인 2018.10.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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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걷는 길목에 텃밭이 있다.
아니 텃밭이 있는 쪽으로 동료들과 습관처럼 발길을 한다. 아담하게 옹기종기 놓인 상자텃밭이 예쁘다. 그걸 가꾸는 아이들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와 소꼽놀이 같은 손길을 더한다.

책상만한 크기에 각종 가을 채소가 이모작으로 자라고 있다. 케일, 콜라비, 적무우 .... 무우, 상추는 보통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어설퍼 보일 수 있지만 처음 하는 아이들은 만만치 않게 손이 가는 일이다.

초보 농사꾼 아이들은 뿌린 씨앗이 한 움큼 싹이 나면 얼마나 솎아내야 할지, 얼마의 간격으로 성장시켜야 할지, 판단하지 못한다. 또 물주기는 얼마의 양이어야 할지, 얼마의 간격이어야 할지, 성장 기간이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빠짐이 좋은 상자텃밭의 생리상 휴일 다음 날이 문제다. 토요일, 일요일 건너 월요일이 되면 물기가 빠진 흙은 푸석거리고 식물들은 시들시들하다.

상자텃밭을 찾은 아이들은 목말라 물길 찾는 새떼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는 잎사귀의 애처러움앞에 실망이 가득이다.

만지고, 뒤집어 보고, 상자에 갇힌 식물들에게 애타게 물길을 기다리는 그 심정을 읽어내려 듯 말이다.

“너무 만지면 손독 올라 식물이 죽는다.”, “한 여름에는 아침 저녁에 물을 줘야 한다.”고 가르쳐 놓으니 가을엔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이다.

땡볕에 물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틴 식물들 앞에 아이들 마저 가뭄 대비작전으로 분주하다.

오늘은 채소에 붙은 벌레를 잡느라 야단법석이다. 아이들은 곤충이 왜 거기에 알을 낳고 애벌레가 자라는지 모른다. 그 생태적 연결고리에 탐색할 관심은 아직 없다. 아직은 신기하고 놀이감같기만 하다. 그저 민이는 그 벌레를 손 안에 움켜쥐고 장난치는 것이 재밌다. 그는 귀엽다는 눈길이지만 옆에 있은 여자애들은 기겁을 하고 물길에 튀는 모래알같이 흩어진다. 그 장난이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나까지 장난의 표적이니 그게 텃밭의 자연질서로 스며드는 건 먼 이야기다.

그 작은 텃밭에도 생명의 먹이사슬이 이어져 있다. 누군가 밟아 발자국을 내놓은 곳을 정리하기 위해 흙을 뒤집었다. 그 안에도 굼뱅이를 비롯 애벌레가 여러 마리 꿈틀대며 흙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곤충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집터를 만든 것이다.

소담한 텃밭에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잘 자라 ‘우럭이’라 표찰을 붙여놓은 케일은 장대처럼 자랐다. 그 잎새 뒷면에 나비가 낳아 놓은 알들이 부화를 기다리다 아이들에게 털린다.

작은 텃밭이라도 소통할 게 많을텐데 아직 거기까진 아니다. 사진을 찍어 기록작업을 한다면 그 변화의 순간을 소재로 또다른 표현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관찰 일기를 만들어 보라고 하면 어떨까?

귀엽지만 자연이 다 들어 있는 텃밭.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다. 그 세계로 끌어오는 일은 귀찮니즘을 숨기고 유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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