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5) 난세유감(亂世遺憾)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5) 난세유감(亂世遺憾)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1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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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객은 꿈길 달려 잠을 청할 수 없구려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로 동음이의어가 있다. [유감(遺憾)]이 있는가 하면, [유감(有感)]이 있다. 앞의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을 뜻하는 어휘이고, 뒤의 [유감]은 ‘마음으로 느끼는 바가 있음’을 뜻하는 어휘다. 이 시문은 실제(失題)되어 필자 임의로 제목을 붙이면서 앞의 [유감]으로 표기했다. 광해군 때의 어지러운 세상을 보면서 눈을 돌릴 수도 없는 처지에 노 철학자의 눈에 비친 어지러운 시대적 상황을 절절하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亂世遺憾(난세유감) / 여헌 장현광

한 겨울 길고 긴 밤 자루하기 그지없고

천지는 어찌 이리 더디게만 밝아오나

쥐 떼들 시끄러워서 꿈길 잃은 숙객이네.

長夜苦漫漫      天地何遲曉

장야고만만      천지하지효

群鼠亂牀邊      宿客夢自少

군서난상변      숙객몽자소

 

숙객은 꿈길 달려 잠을 청할 수 없구려(亂世遺憾)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44~163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 겨울 긴긴 밤은 지루하고 지루하기도 하여라 / 천지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더디게 밝아 오는고 // 쥐 떼들이 침상 가에 난무하여 이렇게 시끄러우니 / 숙객은 꿈길을 달려 차마 잠을 청할 수 없구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어지러운 이 세상 섭섭하여라]로 번역된다. 1608년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나라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는 계모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복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까지 죽이는 폐륜을 저질렀다. 간하는 신하는 없고 모두가 보신책에만 급급했다. 나라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곧은 성품의 소유자 여헌의 생각은 천 갈래 만 갈래였을 것이다.

시인은 어느 날 성주 선영으로 성묘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친지 집에서 하룻저녁 신세를 졌다. 난세의 괴로운 심정을 오언의 한 마디로 토했다. 난세의 한 겨울이 이리도 길어서 조선 천지가 온통 어지러움에 덥혀 밝지 못함을 한탄하는 한마디를 쏟아 붓는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본다.

화자는 서성이는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는데, 쥐새끼들이 침상 가에 난무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유해 낸다. 어찌 잠을 청할 수가 있었으랴. 그래서 화자는 [숙객은 꿈길을 달려 차마 잠을 청할 수 없구려]라고 했다. 비유법과 상징법을 써야 한다는 문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혜안을 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긴긴 밤이 지루하여 천지는 더디 밝아 오누나. 침상가 쥐떼들 시끄러워 차마 잠을 청할 수 없구나’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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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17세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칭송이 높았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써 이황의 문인들 사이에 확고한 권위를 인정받았다. 류성룡·정경세 등과 더불어 영남의 수많은 남인 학자들을 길러냈다.

【한자와 어구】

長夜: 밤이 길다. 곧 어두운 시절이다. 苦: 고통스럽다. 漫漫: 지루하고 지루하다. 天地: 조선 천하. 온 나라 何遲曉: 어찌 새벽이 이렇게 길고 긴 것인가. // 群鼠: 쥐 때들. 亂: 난무하다. 牀邊: 침상의 주변. 宿客: 잠자리에 든 손님. 夢自少: 꿈길이 스스로 작다. 곧 잠을 이루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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