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서울까지
걸어서 서울까지
  • 문틈 시인
  • 승인 2018.10.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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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꿈이 있다.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는 것. 버스, 기차, 비행기로 금방 가버리는 순간이동으로 가지 않고 두 발로 한 걸음씩 걸어서 가 보고 싶다. 그 소망은 여태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 뿐 아직껏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늘 한해가 끝날 무렵이면 이 계획은 다음해 버스킷리스트로 넘긴다. 어쩌면 실현하지 못할 소망이 될 것 같아 이제는 스스로를 믿기도 어렵다.

이런 계획을 거창하게 국토순례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단지 나를 낳아준 땅을 두 발로 ‘스킨십’하면서 국토의 품을 더듬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 생애 한 번이라도 이 땅을 두 발로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은 것. 가다가 해가 지면 여인숙 같은 데서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 길을 걷고 그러노라면 강산에 어려 있는 선조들의 역사, 혼과 마주하면서, 어머니인 국토로부터 위안과 자긍심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다.

옛날 조선시대 청년들은 괴나리봇짐에 가득 청운의 꿈을 담아 짊어지고 서울로 갔다. 과거시험을 보러, 혹은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 달여의 시간을 미투리 몇 짝을 허리춤에 달고 강나루 건너고 고갯마루를 오르며 천리 길을 걸어갔다.

국토의 산천경계를 둘러보며 주막에서 자고 가다가 산적을 만나면 털리기도 하면서 ‘사람은 서울로’하는 행렬에 섞여들었다. 그렇게 두 발로 땅을 걸었기에 이 땅의 강산, 풍속, 인심을 소재로 한 시문을 많이 남겼는지도 모른다. 문집은 물론이고 정자 같은데 시를 새겨 걸어놓기도 했다.

걸어가면 국토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떻게들 사는지, 인심은 어떤지, 고을마다 재마다 서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서울까지 걸었다. 그 시절에 서울을 간 민초들이 얼마나 되었을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직도 그 옛길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봇짐장수가 걷던 길, 이몽룡이가 걷던 길, 홍길동, 임꺽정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길을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트래킹화도, 등산모자도, 배낭에 구급약과 먹을거리, 물, 책, 지도, 칫솔, 면도기, 스틱 등등.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걸어서 서울까지 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몸이 건장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무리다 싶다. 우선 몸만들기가 필요할 듯하다. 다리에 근육도 붙여야 할 것 같고. 이런저런 것들을 살피다보니 오랜 꿈은 결국 더 오랜 꿈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옆에서 아내는 턱도 없는 생각이라며 아서라고 말한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탈이 날 거라며 그런 무모한 계획은 힘이 넘치는 젊었을 때라면 모를까 꿈을 깨란다.

조선팔도를 세 번이나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는 실측 답사 끝에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김정호는 아마도 이 땅에 살다간 사람 가운데 가장 국토를 최애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몸을 이끌고 다니며 실측했다는 이야기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어쨌거나 고산자가 방 안에 틀어박혀 기존 자료들만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은 돌아다녀 보지 않았을까. 김정호가 이 나라 강산을 두루 돌아다녀보고 나서 답사기까지 남겨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걸어서 서울까지 천리 길 도보행이 실현된다면 당연히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천리길 도보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 수영선수 조오련이 대마도까지 바다를 헤엄쳐 간 일이 있다. 그때 조 선수는 상당 기간 몸만들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배낭에 들어갈 물건들만 준비하고 천리 길을 간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지금 이대로 집을 나선다면 백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말 것이다. 한양 천리 길을 도보로 가보겠다는 꿈은 어쩌면 온몸으로 국토를 껴안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의 극에서 나온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땅에 태어나서 가장 해볼 만한 일이 그것 같기도 하다. 천리 길을 걸어봄으로써 비로소 이 땅의 아들로 인증되는 것 같은.

광주에서 서울까지는 300킬로미터 쯤 된다는데 하루 20킬로미터, 즉 하루 50리 남짓 걸으면 보름 정도 될 터이다.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홀로 쓸쓸히 천리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천리 길 생각을 하다 보니 해마다 5월을 택해 서울에서 또는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 사람이든 몇 사람이든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에게는 광주가 그에게 인권도시의 이름으로 기념 돌담장을 만들어 거기에 이름을 새겨주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

천리 길을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들을 무등산이 광주를 품듯이 광주가 그들을 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애 한번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광주까지 걸어보는 것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의례로 만들어간다면. 남도의 세례를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나저나 올해 안 되면 내년에는 기필코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다. 신암마을, 절골, 방애다리, 늬머리, 잿등, 검남골, 큰시암거리 길을 걷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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