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3) 일타홍(一朶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3) 일타홍(一朶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18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 비는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

이씨 조선(朝鮮)이란 사회 관습 때문에 내명부(內命婦)란 전통을 이어받아 정실과 후실을 두었다. 후실을 먼저 맞이했지만 양반 사대부에겐 그에 걸맞은 정실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의 제도이고 관습이었다.

시인은 우연하게 만난 남편의 후실이 되기를 자청한 후, 남편의 출세 가도를 위해 혼신을 바친다. 그리고 남편이 정실을 맞이하도록 주선한다. 이와 같은 아내가 자살이란 극단을 선택하자, 그 상여의 뒤를 따르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一朶紅(일타홍) / 일송 심희수

한 떨기 고운 꽃이 상여에 실려 가고

향기로운 그대 걸음 어찌 저리 더디나

금강에 가을비 내려 그리운 임 눈물인가.

一朶紅葩載輀車 芳魂何事去躊躇

일타홍파재이차 방혼하사거주저

錦江秋雨丹旌濕 疑是佳人別淚餘

금강추우단정습 의시가인별루여

 

저 비는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一朶紅)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1548~1622).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일타홍 한 떨기 고운 꽃 되어 상여에 실려가는구나 /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이 더디기만 하네 // 내 고향 금강에 가을비가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 저 비는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내 사랑 일타홍을 그리며]로 번역된다. 아녀자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남편을 위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으로 그만 자살하고 마는 일타홍은 자기 시신을 심희수의 선산에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긴다. 평생의 큰 은인으로 알고 살았던 심희수는 천생에 끊을 수 없는 인연 속에 함께 살던 그녀의 죽음 앞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시인은 일타홍 실은 꽃상여가 금강에 이르자 홀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으려니. 시인은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참지 못해 위의 시 한 편을 남겼다. 일타홍 한 떨기가 고운 꽃이 되어 상여에 실려간다고 하면서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이 어찌 이리 더디기만 하는가라고 했다. 그리운 임의 마지막 가는 뒤를 따르면서 통회하는 심회다.

화자는 상여 속에 실려 있는 연인을 한 떨기 꽃으로 보았다. 혼마저 차마 발길을 놓지 못했던지 옮기는 발길마다 더디 가니 한스러워한다. 금강(錦江)을 적시는 가을비가 붉은 바탕 하얀 글씨의 명정(銘旌)을 적셨다. 빗방울이 살아있을 때 거두지 못한 일타홍의 눈물은 아닌가 모르겠다는 화자의 깊은 심회를 담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꽃 상여에 실린 일타홍 혼이 가니 더디구나, 가을비에 명정이 적시니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라는 상상력이다.

================

작가는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1548~1622)로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다. 형조판서에 올라 호조판서로 전임됐을 때, 명나라 경략 송응창의 접반사가 되었다. 난으로 황폐한 관서지방의 많은 백성을 구출하였다. 예조판서, 이조판서,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한자와 어구

一朶紅: 일타홍, 사람이름. : 한 떨기. 載輀車: 차에 실려 가다. 芳魂: 향기로운 혼백. 何事: 무슨 일로, 어찌 이다지도. 去躊躇: 더디게 가다. // 錦江: 금강, 충남에 흐르는 강. 秋雨: 가을비. 丹旌: 붉은 명정. : 젖다. : 의심하건데. : 이다. 佳人: 내 임. 別淚餘: 이별의 눈물 흔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