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에 대한 논란
하정웅에 대한 논란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09.13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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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보거나 생각하는 관점은 모두가 다르다. 대상에 대해 옳다 그르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누군가 어떤 판단을 한 결과는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다. 그동안 배워온 학습이나 경험의 결과에서 가능한 추론을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결정 또는 판단이라고 하는 것들도 한계가 있는 ‘제한된 결정’이다.

광주 미술계에서 최근 ‘하정웅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언론사가 취재를 하고 SNS에서는 이런저런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하정웅씨가 그동안 기증한 작품의 수준 문제와 작품 기증에 따른 이중계약을 문제 삼고 있다. 그 내막이야 어찌 되었던지 간에 우리는 함부로 ‘제한된 결정’ 속에서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하정웅씨는 메세나 천사로 일컬어진다. 1993년부터 광주시립미술관에 212점을 시작으로 전국의 주요 미술관에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을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에 재일화가 작품을 비롯한 국내외 작가 작품 약 2천500여 점과 국립고궁박물관에 영친왕과 영친왕비 유품 600여 점을 내놓았다. 부산시립미술관 290여 점, 포항시립미술관 300여점, 영암군에 미술품과 미술 자료 3천여 점을 기증해 공립미술관을 조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국내외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기증한 것이 약 1만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그 작품들의 수준이 어떠한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하정웅씨도 미술작품의 수준을 판단하고 작품을 모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자리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작품을 모으게 됐고 작가를 후원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수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모으다보니 우리에게는 생경한 작가와 작품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1983년부터 35년 동안 광주 미술계에 발을 들여 작품을 전시 기획하고 작가들을 만나고 국내외 여행을 할 때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장 먼저 찾았다. 뒤늦게 미술대학과 대학원까지 다니며 공부했다. 솔직히 지금도 작품을 보면 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자위를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의 미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고흐는 어떠했는가. 생전에 작품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당시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오늘날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다. 죽을 때까지 무명이었던 그 아니던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마다 한계가 있고 보는 판단 기준이 다르다.

하정웅씨의 ‘기증’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시가 기증 조건을 정확하게 밝히면 좋겠지만 아직은 소문만 무성하다. 무엇이든 투명할 필요가 있다. 조건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된다. 아무튼 그것이 순수한 기증인지 조건부 기증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우선 ‘1만여 점’이 사람을 압도한다. 돈의 가치를 떠나 평생 동안 모아온, 지금도 모으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기관에 맡긴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행위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광주에서 누가 ‘기증’을 얼마나 했는가 되돌아볼 일이다.

또 광주시립미술관 상록분관을 '하정웅미술관'으로 바꾸어 개인미술관인 것처럼 한 것에 대한 불만도 일부 있다. 하지만 이런 정도 기증한 사람에 대해 이런 예우를 한 것이 나쁘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이든 연극이든 공로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쓴 사례는 많다. 심지어 대학도 그렇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증을 하려면 순수하게 하고 뒷일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기증에는 조건이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도 한다. 그럴 수 있다. 기증자의 입장에서는 기증작품들이 제대로 대접 받기를 희망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땀과 피를 흘려 모아온 것들을 기증했는데 푸대접 받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기증’에는 계약서가 있을 것이다. 계약에는 조건이 있다. 조건은 양쪽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 조건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가는 따지기 어렵다. 단순히 기증작품의 질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그 행위가 지역미술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는 좋은 영향도 있고 ‘문화권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옛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한길 속은 모른다.”고 했다. 이 때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 판단의 수위는 학습과 경험의 차이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거나 상대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하정웅씨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기대 수준에 못미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의 문화권력은 보는 관점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지난 25년간 그가 광주 미술계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온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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