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2) 아본청산학(我本靑山鶴)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2) 아본청산학(我本靑山鶴)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12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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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운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지루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라 안팎에서는 전쟁 후유증 치료에 정신이 없었다. 일본은 수차례에 걸쳐 친교사신 보낼 것을 요청해왔다.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사명대사를 천거하여 보냈다.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德川家康)를 만난 사명당과 문답(問答)하는 시문이다. 물음도 소름이 끼쳤지만, 시인의 대답은 더 명쾌했다. ‘너는 봉황이 노니는 이곳에 왜 왔느냐?’는 질문에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었는데 잘못 떨어져 여기에 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我本靑山鶴(아본청산학) / 사명당 유정

나는 본디 청산학에 오색구름 놀았고

하루아침 운무 서려 사라지는 바람에

야계가 들끓은 곳에 떨어져서 왔구나.

我本靑山鶴      常有五色雲

아본청산학      상유오색운

一朝雲霧盡      誤落野鷄群

일조운무진      오락야계군

 

아침에 운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我本靑山鶴)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사명당(風月亭) 유정(惟政:1544~16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었는데 / 청산에 살 때 항상 오색구름 위를 다니면서 놀았었구나 // 그런데 하루아침에 운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 이렇게 야계(꿩)들이 노는 데로 잘못 떨어졌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나는 본디 청산학이다]로 번역된다. 위 시는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와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나눈 문답 시로 개화예술공원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다음은 도쿠가와가 처음 묻는 시다. [돌 위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石上難生草) / 방 안에는 구름이 일기 어렵네(房中難起雲) // 너는 어느 산의 새 이기에(汝爾何山鳥) / 봉황이 노는 데 왔느냐?(來參鳳凰群)] 이에 답한 시가 위 시다. 일본 장수의 조롱에 상대를 꿩 새끼로 비유한 시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후 1604년 선조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강화사로 건너가 1605년 당시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화협상을 벌였다. 사명대사가 교토 후시미성(伏見城)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시를 주고받았다. 화자는 본래 청산의 학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운무가 사라져 잘못 떨어졌음을 빗대고 있다. 간담이 서늘함을 느낀다.

이 시로 인하여 포로 3500명과 약탈해간 문화재를 환수하여 돌아오고 향후 250년간 평화수교협약을 맺었다. 탁월한 인품과 능력을 인정받아 선조는 영의정에 제수했으나 삼일 만에 사임했던 일화는 지금도 ‘삼일정승’으로 남아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나는 본디 청산의 학 오색구름과 놀았었네, 운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아계(꿩) 세상에 떨어졌다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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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1544~1610)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 승병장이다. 1562년 승과에 합격하자 박순, 임제 등의 유생들과 사귀었으며 재상인 노수신으로부터 <노자>, <장자>, <문자>, <열자>와 시를 배웠다. 그 뒤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다.

【한자와 어구】

我本: 나는 근본 ~이었다. 靑山鶴: 청산의 학. 常有: 항상 ~이 있다. 五色雲: 오색의 구름. // 一朝: 하루아침에, 곧 일시에. 雲霧: 구름과 안개. 盡: 다하다, 사라지다. 誤: 잘못하여서. 落: 떨어지다. 野鷄群: 야계의 무리들, 곧 꿩의 무리들이 노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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