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화원, 서창 '시혜불망비' 주인 찾아내
서구문화원, 서창 '시혜불망비' 주인 찾아내
  • 정성용 시민기자
  • 승인 2018.09.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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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비석 안내표지판 없이 길가에 먼지 뒤덮여

광주 서구 극락강의 서창나루 마지막 뱃사공이면서 일제강점기 때 서창에 나눔을 베푼 인물로 알려진 박호련의 행적을 최근 서구문화원에서 찾아 공개했다.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재 등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서창 지역민들에게 두 번씩이나 쌀과 돈을 풀어 함께 나눔의 삶을 실천한 박호련의 당시 신문기사와 사진, 족보 등을 찾아냈다.

박호련의 나눔을 보도한 '중외일보' 1030년 1월 22일자
박호련의 나눔을 보도한 '중외일보' 1030년 1월 22일자

공개자료에 따르면 1925년과 1929년 두 번에 걸쳐 서창민들이 나눔을 베푼 박호련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박호련시혜불망비’ 비석을 두 개나 세웠다. 이 비는 현재 서창치안센터 건너편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박호련은 그동안 일제강점기 시절 서창나루 뱃사공으로 일하다 돈을 모아 서창민들이 춘궁기와 가뭄 등으로 어렵고 고향을 떠나려 할 때 쌀과 돈을 출연해 지역민들을 구제하는 등 나눔을 실천했다는 정도로 알려졌다.

서구문화원은 광주에서 나눔의 상징이 되고 있는 박호련에 대한 행적을 지난 1년여간 조사 끝에 최근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중외일보 1930년 1월 22일자에 그의 행적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찾았다.

서구 서창동 서창치안센터 건너편 길가에 있는 2개의 박호련시혜불망비가 있다.
서구 서창동 서창치안센터 건너편 길가에 있는 2개의 박호련시혜불망비가 있다.

당시 중외일보에 따르면 ‘희세(稀世)의 자선가 박호련씨 기념비, 광주 서창면 12구민의 감사루(感謝淚)의 결정(結晶)으로’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기사가 95줄에 걸쳐 실려 있었다.

기사 내용은 1월 19일 이회춘 서창면장의 주관으로 200여명의 서창민들이 모여 김병두(金炳斗), 설병호(薛炳浩) 등의 축사와 축하음악 등의 행사를 가졌고 박씨의 어려웠던 과거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당시 이회춘 면장은 이양우 전 전남도교육감의 부친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부채를 물려받아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아내와 함께 고향을 몰래 떠났다. 타지에서 3년여 동안 생활하다 지쳐 돌아와 채권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뱃사공부터 시작해 정미소를 운영하는 등 고생 끝에 천석꾼이 될만한 돈을 벌었다.

당시 서창지역이 가뭄 등으로 생활고를 겪는 동네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두 번에 걸쳐 쌀을 내놓고 돈까지 내놓는 등 나눔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서구문화원은 추가로 수소문을 통해 박호련의 후손이 나주 영산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후손은 종손의 부인만이 살아있었다.

서창의 나눔의 주인공 박호련씨 생전 모습
서창의 나눔의 주인공 박호련씨 생전 모습

이 사실을 제공한 서창동 발산마을 곽창기씨는 “박호련 씨가 처 외할아버지로 손자는 죽고 부인만이 영산포에 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곽씨를 통해 박호련의 족보와 사진을 입수했다.

확인 결과 박호련은 반남박씨이며 1892년 2월 11일 출생해 해방 후인 1946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부인 정룡운(1892~1927)과의 사이에 1남3녀를 두었고 첫 부인이 죽자 이듬해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

서창치안센터 앞에 있는 2개의 비는 “아기고 아껴서 남으면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라든가 “남의 굶주림을 자기 일로 여겨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인서 서구문화원장은 “고관대작도 아니고 지역의 명망가도 아닌 보통사람에게 마을 사람들이 비석을 2개나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나눔의 큰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찻길 옆에 세워져 먼지에 뒤덮이게 둘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서창나루 인근 등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옮겨 그 나눔의 뜻을 기려야 옳다”고 말했다.

한편, 박호련 시혜불망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節食節用 아끼고 아껴서 남은 것이 있는 줄 알면,

剩知救貧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네.

恩深防海 깊고 깊은 은혜가 바다와 같고,

德高於山 그 높은 덕은 산보다 높다네.

1925년 2월 서창면 共立

飢思若己 남의 굶주림을 자기 일로 여겨,

傳施恤貧 여기저기 나눠주어 가난한 이 구제했네.

萬口咸誦 모든 사람들이 입 모아 칭송하니,

遺德日新 남기신 덕은 날로 새로워라.

1929년 11월 서창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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