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박물관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미이라가 아니다
전통은 박물관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미이라가 아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주를 다녀왔다. 전주와 나주를 합해서 전라도가 되었을 만큼 옛날 호남의 서울은 광주가 아니라 전주였다. 백제의 부활을 꿈꾸었던 견훤의 후백제 도읍지도 전주였다. 과거에 전주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였는지는 전주 객사와 거기 걸려있는 편액이 생생하게 증언한다.

전주 객사는 건물 크기로도 전국 최고지만 거기에 걸려있는 편액의 크기는 악- 소리가 난다. 가로 466센티, 세로 179센티 미터 크기다. 豊沛之館-어른 키만한 네 글자가 옆으로는 칸살 하나를 다 차지하고 위로는 창방에서 서까래 끝동 까지 가득 매웠다. 초서체의 호방하고 힘찬 필체의 이 글씨의 주인은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다. 선조 때 우리나라에 왔던 중국 사신 주 지번의 글씨다.

진나라 말기의 혼란을 수숩하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것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었다. 그는 시골 소읍, 豊沛(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이다. 전주가 조선을 건국한 이 성계의 관향임을 그리고 왕도로서의 전주의 위세와 품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현판이다..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 또한 豊沛鄕의 南門이라는 뜻이다. 경기전, 전주사고, 조경묘, 예종대왕태실, 오목대, 이목대... 등이 모두 전주가 왕도라는 것과 관련된 유적이다.

나그네에게 드디어 전주에 왔음을 가장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것은 호남제일문이다. 16(?)차선 도로 한가운데를 온전히 막고 서있는 호남제일문, 크기에 있어서만은 호남제일문임이 확실하다. 공손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이 거만한(?) 환영에 길손은 벌써 부터 주눅이 든다. 이런 문은 경주 입구에도 서있다.

전주 역사는 전통 한옥 형태의 시멘트 집이다. 전주 시청 건물은 서양식 건물인데도 한옥 지붕을 이고 있다. 내 눈에는 꼭 양복 입고 갓 쓴 영감처럼 우스꽝스럽다. 전통의 고장답게(?) 거리의 공중전화 박스조차 프라스틱으로 만든 기와지붕을 쓰고 있었다. "전주는 전통의 고장이다. 전통의 고장이라니까!" 발악을 하는 듯이 보인다.

이런 코메디는 전주만이 아니다. 경복궁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시대의 부끄러운 문화유산이자 최대의 흉물 가운데 하나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몽땅 모아서 한 건물로 만든 대단한(?) 야심작이다. 안내문을 통해 이 건물에 대한 정부의 자랑을 들어보자.

'건물의 전면 중앙은 조형성이 뛰어난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형태를 본떠 만들었고 건물 전체의 벽면과 난간 구성은 삼국시대의 목조가구식 기단 위에 경복궁 근정전의 장중한 석조난간 모형으로 꾸몄다. 전면 가운데 보이는 5층탑 건물은 법주사의 팔상전을 동편 3층 건물은 금산자 미륵전을 표현하였고 서편의 2층 건물은 화엄사의 각황전을 표현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재구성하였다'

그래서 이 건물이 그렇게 놀라운 건물이 되었는가? 왜 우리의 공무원들은 모를까? 남 정임의 입술에 윤 정희의 코에, 문 희의 눈에 ... 내노라는 경국지색들을 모아 한 여인을 만들면 이론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나올 것 같지마는 사실은 왠 마귀할멈이 나온다. 국립민속박물관이야말로 그러한 무지의 산물이다. 국민의 세금만 엄청나게 먹어치우고 이 건물만의 개성이라고는 먹고 죽을래도 없는 이상한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다.

이 민속박물관 이후에도 전통의 강요는 계속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관공서 발주의 건물들이 콘크리트로 된 기와집 모양으로 지어졌다. 도처에 기와를 얹은 미술관, 공항, 도서관, 기차역이 생겨났다. 예술의 전당도 전통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라는 정부의 강요 때문에 수천배 크기로 확대된 갓과 부채가 실과 종이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최근에 잇달아 완공된 월드컵 경기장들 또한 국민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거창한 우리의 전통들이 재현되었다고 노래 불리워진다. 우리의 방패연이, 잔치집의 차양이, 솟대가, 바람을 먹은 돛이.... 상징화되었다나 어쨌다나...

나는 프라스틱으로 된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전주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주 역사 건물에서 그리고 시청 건물에서 공무원들의 강박관념을 읽는다. 전주는 전통적인 도시이다. 그러니 역사도 시청도, 심지어 공중전화박스 마저 뭔가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렇게 프라스틱 기와지붕이라도 얹어 놓아야 발뻗고 잠들 수 있었을 공무원들의 강박관념이 안쓰럽기 까지 하다.

의재미술관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비판 또한 시멘트 노출벽을 그대로 드러내는 너무나 서양적인 건물에서 오는 거부감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 남화의 거장을 기리는 미술관과 현대적인 너무나 현대적인 건물이라는데서 오는 인지부조화 때문에 불편해진 심기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만의 억설이기를 바란다.

전통은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의 겉모양만 복재했다고 전통을 승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통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모양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살아움직이는 생물이지 박물관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죽은 것이어서는 안된다. 매일매일 그 시대정신을 담으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전통은 반복이 아니라 발전이다. 용솟음치는 창작의지다. 그것이 중국의 사경산수에서 우리의 진경산수를 만들어낸 힘이다. 신라시대의 금관을 조선시대에 복제해 만들었다고 그것을 박물관에 들여놓지 않는다. 고려 시대의 청자가 조선 시대의 도공들에게 강요되었다면 우리는 백자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전통의 하드웨어의 보존을 전통문화의 승계라고 생각해온 편견이 절름발이 전통 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그 결과 민속마을로 지정되면 거기 살던 사람들은 번듯한 문화주택이라는 이름의 이주단지로 내쫓고 빈집만 보존하는 유령들의 마을을 전통마을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 마을이 무슨 마을인가?

건축물은 인간 생활이 담기는 그릇이다. 거기에 담겨졌던 문화적 내용물을 간데 없고 빈그릇만 지키는게 어떻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인지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서 오고갔던 문화적 담론은 간데 없고 빈 건물뿐인 서원, 정자, 고택들이 추수가 끝난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전국에 서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 비워지고 있다.

대구 화원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얼마 안가면 문 익점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남평 문씨들의 세거지, 인흥마을이 있다.(문희갑, 현대구 시장의 고향 마을이다.) 사람들은 경주에는 신라만 있는줄 안다. 경주 근교 안강에는 월성 손씨들과 여강 이씨들의 집성촌인 양동 마을이 있다(우재 손 중돈과 회재 이 언적이 태어난 마을이다.) 살아있는 전통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들이다.

진도 끝자락의 남도석성은 정말 아름답다. 그 성안에 옹기종기 민가들이 빼곡이 들어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성벽을 걸으면서 나는 몽쉘미쉘 근처의 생말로를 떠올린다. 영국이 빤히 건너다 보이는 생말로는 완전한 중세 도시다. 타임 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 시계가 중세에서 멈춰서 버린 듯 생말로는 21세기 속에 그렇게 남아있었다. 중세 때의 교회, 성, 가계,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 그대로 사람들이 산다.

호텔로 시청으로 가계로...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얼마 전에 진도답사를 갔을 때 그 성안에 집들을 상당 부분 진도군이 사들였다는 불길한(?)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들을 내쫓아버려 사람 냄새도 민속도, 인간적 드라머도 빼앗아 버리고 영화 세트장처럼 썰렁한 그 마을에 주인 없는 행사만 요란한 지금까지의 전통마을의 문제가 재현되지 않을까 겁이 더럭 났다. 남도석성이 낙안읍성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물인 전주 경기전 코 앞에는 서양의 로마네스크 주조에 비잔틴풍이 가미된 전동 성당이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다. 경기전을 위해 서양풍의 전동 성당을 허물어야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국수주의의 다름 아니다.

전통의 소프트 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만 보존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의 나라 보물 제1호 남대문(숭례문)은 오늘도 자동차의 바다 가운데 섬으로 외롭게 떠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대문은 대단한 조형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문은 아니다. 전통은 박물관 유리관 안에 누워있는 미이라가 아니다.
박물관 밖에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