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오면
구월이 오면
  • 문틈 시인
  • 승인 2018.08.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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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진맥진한 몸으로 여름을 지났다. 나는 이 혹독한 여름에 어머니의 안부가 늘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다. 누가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가을이 뭐 올해라고 안 오겠느냐고 하는 그딴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 죽겠는 사람에게 그림 속의 빵 덩어리를 떠올려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목숨을 앗아갈 듯한 여름이 두렵고 무서울 지경이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여름도 지나간다는 말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나 요 며칠 비가 오고 날씨가 지낼만해지니 자연의 신비라고 할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 어떤 괴로움도, 슬픔도, 미움도, 사랑까지도 다 지나간다.

여름이야 지구가 태양을 돌아가는 행로의 어느 시점에서 떠나가게 되어있다. 아무리 덥거나 말거나. 그렇긴 하지만 올 여름은 하루하루가 나를 두려움 속에 가두어 놓았다. 비가 내리고 나자 벌써 풀숲에서는 반가운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가을, 가을’, 하고 우는 소리 같다. 아직도 한낮은 덥긴 하지만.

가을의 전령이라고 할 귀뚜라미 소리도 그 소리들에 섞여 고달픈 여름을 보냈을 모든 어머니, 동생, 누나, 고모, 삼촌, 조카, 당숙, 외숙들에게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어찌 기쁘고 반가운 소리가 아니랴. 그래도 워낙 여름에 시달려서인지 갑자기 가던 여름이 되돌아오지나 않을까싶을 정도다. 가혹한 여름을 견디고도 무사히 살아남은 이웃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마치 멧돼지떼가 고구마밭을 초토화시키고 떠난 듯 여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상처를 내고 갔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죽다 살았다고 말한다. 일평생 이런 여름은 처음이라며 아직도 공포감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올 가을엔 내년 여름 대책을 미리 세울 거란다. 대책이란 것이 왕골 돗자리, 마포 이불 따위를 마련하는 것. 낮은 침대도 구입하고 어쩌고 하는데 사실 그런 아내가 슬며시 내년 여름과 겹쳐 겁이 나기도 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내년 여름은 이번 올 여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아내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해피가 더위에 시달려 거의 죽을 둥 살 둥 하자 강아지 등에 찬 물수건을 덮어주고 선풍기를 틀어주었다. 강아지가 좋아하더란다, 신기술을 발명한 사람처럼 뽐내더니 며칠 그러고 나자 강아지는 그만 기관지염에 걸려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자연도 무슨 의도가 있을 거라고 본다. 혹독한 여름을 이 땅에 보내어 보다 강한 생명체를 가려내는 작업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석탄을 때고, 배기가스를 내뿜고, 뭐 이런 것들로 지구를 못살게 구니 보복차원에서 뜨거운 여름이 온 것은 아닐까?

달라진 지구 환경에 최적한 생명체를 골라내서 적응시키려는 거대한 전략 같은 것이 은연중 숨어있는 것이라 생각 든다. 나는 이 쪽에 한 표다. 어쨌든 사람들은 여름이 물러가자 그동안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것인 양 ‘짜잔’ 하고 다들 생생한 얼굴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기이할 정도로 놀랍다. “용케 살아 계셨군요.” 내가 반 농담 삼아 이렇게 지인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그래 말 말아요. 정말 올 여름은 힘들었어요.” 한다. 모두들 힘들었다는 고백이다.

가을이 오면 나는 방금 다녀간 여름을 기억하며 서늘한 대기 속으로 폐부 가득히 공기를 들이마시며 마음껏 걸어볼 참이다. 여름에 좁은 방에 갇혀 죄수처럼 지낸 생활, 참을 수 없었던 정말 악몽 같았던 여름을 잊고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았던 많은 책들을 마저 다 읽어치울 것이고, 손도 대지 못한 쓰다만 글들도 마저 끝낼 것이다.

아, 그리고 피서객들이 썰물처럼 물러난 바다로 가서 하루 종일 푸른 파다가 저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파도들이 밀려와서 내 눈시울에서 부서지는 모습을 말없이 실컷 보고 싶다. 웅장한 우주의 소식을 귀 기울여 듣고 싶다.

오늘 오후 갑작스레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는데 나는 곧 작은 우산을 펴들고 거리로 무작정 걸어 나갔다. 어릴 적에 이런 비가 올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동생들과 마당에 뛰어나가서 비를 맞으며 껑충껑충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구두가 빗물에 질컥거리고 바짓가랑이가 젖고 바지 전체가 물에 빠진 것처럼 젖어서 나중에는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지하철 의자에 앉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마냥 좋기만 했다. 마치 다시 살아난 기분 같은 그런 감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우산 위에 퍼붓는 빗소리는 또 얼마나 좋았던지!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 하고 자부해도 그저 자연이 낳은 자녀일 따름이다. 자연이 그의 기분을 최고로 혹은 최악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전에 ‘내가 날씨 때문에 기분이 변할 것 같소?’한 기억이 있는데 날씨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그렇다. 오늘 빗길에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냥 기뻤다.

내 옆으로 차가 물을 흠뻑 튀기며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구월이 온다는 것이 내게는 무슨 선물처럼 여겨진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만 같다. 나는 벌써 새 옷을 입고 구월과 악수할 채비를 하고 있다. 어디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여름아, 잘 가라.’ ‘구월아, 어서 오너라’하고 소리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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