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여름
두려운 여름
  • 문틈 시인
  • 승인 2018.08.1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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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면 오늘은 또 어떻게 무더운 하루를 보낼까, 겁부터 난다. 날마다 더위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올 여름 더위는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심하다. 더위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이다. 매일 34도C가 넘는 날들이 계속되다보니 마치 화덕 옆에 있는 기분이다. 이건 그냥 여름이 아니다. 거의 폭력적이다. 자연이 무슨 일로 잔뜩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다.

이 기록적인 더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열에너지가 대기를 덥게 하는 원인으로 인간이 빚어낸 업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화력발전, 공장굴뚝 연기, 배기가스, 에어컨 냉매, 인터넷 클릭, 휴대폰 사용 같은 지구를 열나게 하는 인간들의 문명 향유 행태가 그 임계점에 이르러 해가 갈수록 지구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명은 거개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시골에 홀로 떨어져 사시는 구순의 어머니는 에어컨을 달아드리겠다고 사정해도 싫다고 하신다. 에어컨 바람이 싫다신다. 올 여름 내 최대의 걱정은 어머니의 건강이다. 날마다 안부 전화를 해야 마음이 놓인다. 귀가 잘 안 들리시니 목청껏 소리친다. “아이스팩을 수건에 싸서 얼굴이랑, 팔뚝에 대고 지내세요.” “오늘은 무더우니 성당에 가지 마세요.”

다행히 가까이 형제들이 살고 있어 어머니를 지켜주고 있다. 노부모를 둔 자식들은 올 여름이 이중으로 더울 것 같다. 에어컨이 없으면 집에서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올 여름같은 푹염에 어쨌든 더위 먹지 않고 살려면 에어컨을 켜놓고 지낼 수밖에 없다.

매스컴에서는 111년만에 가장 심한 더위니 하고 야단인데, 기록상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외출하기가 꺼려질 정도다. 나는 공포스런 이 더위를 참아내는 방법으로 샤워, 선풍기, 돗자리, 마포 담요, 수박, 그리고 집안의 모든 문 개방으로 대응하고 있다. 에어컨은 찬바람을 직접 쬐면 기침을 유발해서 거의 틀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위를 잊는 다른 하나의 방법으로 유투브에서 비오는 풍경, 폭풍우 치는 바다, 눈이 내리는 시골 정경 같은 영상을 보며 잠시 더위를 잊어보기도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올 여름이 갑자기 무더운 것이 아니다. 벌써 전부터 한반도 남쪽 바다나 제주도에 아열대 물고기나 새가 발견되고, 남쪽에 서식하는 과일나무들이 북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나왔었다.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아열대 기후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으로 30년 후면 여름은 5개월로 늘어나고 평균 34도쯤 될 것이며, 47,8도를 찍는 날들도 여러 날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학자의 코멘트를 본 일이 있다. 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소나무는 장차 한반도 북단에만 남고 거의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보도도 있다. 소나무가 없는 나라, 생각하기만 해도 벌써 슬프다.

이렇게 해가 갈수록 더워지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지구 기온이 높아져서 가령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는다면 그 지하에 무진장 묻혀 있던 탄산가스가 터져 나와 대기 온도는 더욱 높아지고 지구 환경은 더 나빠질 거라고 한다. 실제로 그린란드 만년 빙하가 녹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이렇게 나쁜 쪽으로만 전망하지 말고 좋아지는 전망은 없을까. 석탄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 기온이 높아지는 것을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부자 나라들은 석탄 에너지를 펑펑 써서 산업을 발전시켜 부강한 나라가 되어놓고 지금 와서 못 사라는 나라들에게 ‘우리 탄소 배출을 줄입시다’하면 말이 먹힐 리 없다. 중국이 빠르게 탄소 배출 산업을 일으켜 두 번째 부자 나라가 되었다.

이런 걱정과 염려는 한가한 소리처럼 들린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살고 있는 당대를 산다. 먼 미래를 위해 살지 않는다. 통일신라가 뒷날의 고려를 염두에 두고 당나라 힘을 빌려 통일을 했을까. 아니, 이성계가 조선의 종말을 생각하고 정치를 했을까. 인간은 자기가 사는 당대의 한계에 갇혀 있다.

내가 지인들을 만나면 ‘내년 여름이 더 더워질까 걱정스러워.’ ‘나라 경제가 고꾸라지고 있는데 큰일이야.’ 그러면 돌아오는 말이 ‘건강관리 잘하고 잘 먹고 잘 자고 그러면 돼.’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걱정한댔자 아무 소용없다고 충고해준다. 나는 대응을 못하고 순간 억지로 그 말이 옳다는 표정이 되어버린다. ‘그래, 만나서 재미있는 얘기나 하고 지내자고….’

그렇지만 인간은 당대를 살다 죽는 생물학적인 몸 말고, 미래를 이어가는 역사적인 몸이 있다. 대를 이어가는 일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책임이다. 자식을 낳고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희망을 품고 올해보다 내년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역사적인 몸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바라는 평화공존 같은 것.

루이 15세가 임종하면서 했다는 말이 있다. ‘내 죽은 뒤에 홍수가 나건 말건’(Après nous, le délug(After us, the flood). 나무 한 그루 심기, 전기 덜 쓰기, 비닐봉지 사용 자제같은 이런 사소한 일들이 훗날의 지구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닐까. 아, 덥다. 겨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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