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문화인물 콘텐츠화 나서야
광주지역 문화인물 콘텐츠화 나서야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08.08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

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영웅’ 대접을 받으며 러시아로 귀국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항구에 가면 솔제니친의 동상이 있다. 책 한 권을 왼손에 낀 채 막 항구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이 동상을 보는 순간 수많은 감동, 감흥이 가슴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블라디보스톡 혁명광장에는 무명용사를 상징하는 커다란 동상이 있는가 하면 도시 곳곳에 레닌동상과 기념비들이 있다. 성직자들의 동상도 있으며 블라디보스톡 출신 영화배우인 율 브리너의 ‘왕과 나’에 출연했을 때 모습도 그의 생가 앞에 세워놓았다.

최근 블라디보스톡은 몇몇 연예인들의 프로그램 방영 이후 한국인들이 찾는 주요 관광상품으로 뜨고 있다. 그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이런저런 역사적인 인물들을 잘 포장하여 문화관광의 새로운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청나라로부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차지한 뒤 1860년 군사기지로 등장한 지역이 블라디보스톡이다.

광주는 무얼 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160년 된 블라디보스톡에 비한다면 더 긴 역사와 더 많은 콘텐츠가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문화도시다운 문화인물, 역사인물은 그지없이 풍부하다.

서창에는 의로움의 상징인 박상 선생이 있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과 김세근 장군을 비롯하여 의병도청을 만들었던 박광옥도 있다. 한말 의병장으로는 양진여 양상기 부자의병장과 김원국 김원범 형제의병장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광주시가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정율성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있고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있다. 더 노력해서 우리 지역의 인물을 찾아내고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도시라고 한다면 우선 우리 지역의 인물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하고 이를 콘텐츠화하고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광주시는 ‘정율성’이라는 인물과 관련 어린 시절 우리 지역에 살았었고, 중국에서 음악영웅이었다고 하여 다양한 상품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생가로 알려진 불로동 터는 매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율성이 성장했던 양림동 터와 학교를 다녔다는 화순의 터까지 연계한다면 중국관광객을 겨냥한 좋은 상품이 될 수 있지만 광주시는 음악회에 대한 예산만 이래저래 쓰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모르고 있는 셈이다.

대개 문화관광을 할 때는 다양한 상징물, 동상이든 현판이든 유물이든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관점의 스토리텔링이 첨언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광주는 이런 것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 같다.

광주지역에는 수많은 문인들이 있지만 시비나 문학비가 그리 많지 않고, 화가들도 많지만 개인박물관이나 개인미술관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도대체 광주는 무엇을 자신 있게 보여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 홍보는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스마트 폰을 활용한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유투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마치 생중계하듯 이루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정보를 얻는다. 양림동 펭귄골목이 그래서 유명해졌다.

필자는 최근 일제강점기 때 근대 마지막 유학자로 불러도 좋을 현와 고광선 선생(1855~1934)에 대한 자료를 찾아 정리 중에 있다. 서구 용두동 봉황산 기슭에 엄이재라는 띠집을 짓고 650여명의 지역 문인들을 길러낸 그의 업적에 비한다면 너무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조명도 받지 못했다.

그에 관련된 자료로는 그의 사후 박하형 등 문인들이 조성한 그의 사당에 관한 기록인 ‘봉산사지’와 그가 생전에 썼던 시와 편지, 상량문, 기문 등을 집대성한 16권 8책으로 된 ‘현와유고’라는 방대한 문집이 있다. 1962년 한문으로 간행된 이 책은 아직 번역도 안 되었다. 불과 10여 편의 시만 번역이 된 상태다.

필자는 최근 그의 종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고광선의 영정을 찾아냈다. 1926년에 그려진 이 초상화는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가로 부를 수 있는 채용신 화백이 그린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보관 잘못으로 곳곳에 좀이 슬고 있다. 하루빨리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그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과 그와 관련 흔적들에 대한 시각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밖에도 지역 문화인물이 많은 곳이 광주이다. 광주는 이런 인물들을 브랜드화하고 스스로 스타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도시의 선택과 집중에 대한 논의구조가 절실하다. 문화경제의 관점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