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유학자 현와 고광선 영정 '발굴'
일제강점기 유학자 현와 고광선 영정 '발굴'
  • 정성용 시민기자
  • 승인 2018.08.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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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지역 문화재 가치 지녀 보존 대책 서둘러야”
석지 채용신 화백이 1926년에 그린 현와 고광선 선생 영정
석지 채용신 화백이 1926년에 그린 현와 고광선 선생 영정

일제강점기 광주지역의 근대유학자로 손꼽히는 현와 고광선 선생(1855~1934)의 영정이 최근 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에 의해 발굴되었다.

고광선 선생이 72세 때인 1926년(병인년) 6월에 그려진 것으로 영정의 크기는 56.5×94cm이며 족자의 크기는 63.5×105.5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더욱이 이 영정을 그린 사람은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가로 불리는 석지 채용신(1850~1941) 화백으로 초상화 분야의 작품성에 있어서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지 채용신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했으며 전통양식을 따른 마지막 인물화가로 부르고 있다. 전통과 서양화법을 조화시켜 세부 묘사와 원근, 명암 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화가로 평가된다. 이 영정은 종후손인 고달석씨가 보존하고 있다.

고광선 선생은 평소에 고종 임금을 몹시 흠모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데 이어 1918년 고종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들은 그는 슬픔에 잠겨 서구 용두봉 봉황산에서 650여명의 문인을 길러내던 중 엄이재 뒤에 있는 큰 바위에 읍궁암이라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이 읍궁암(눈물바위)을 고종 임금의 능묘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그 앞에 꿇어앉아 3년 동안 소리 내어 울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바위에 이끼가 끼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이다.

정인서 서구문화원장은 “고광선 선생이 미리 자신의 영정을 남겨놓으려 한 것인지, 석지 화백이 남도의 유명한 학자인 그의 초상화를 그리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면서 “이 영정이 지역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관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단 오른쪽을 비롯하여 곳곳에 일부 좀이 들어 훼손되는 등 안타까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영정을 어떻게 영구 보존할 것인가를 놓고 전문가의 보존처리 방식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칫 훼손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고광선 선생은 우리 지역의 마지막 유학자로 추앙될만큼 650여명의 문인을 길러냈다”면서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는 후손들이 이를 기증하기를 바라고 있고 후손들과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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