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결벽증
  • 문틈 시인
  • 승인 2018.08.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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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며칠 전 퇴직 사우 모임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회사 상사였던 분을 마주했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누던 중에 상사가 그에게 가만히 소곤거리듯 말했다. 얼굴에는 알 듯 모를 듯 미소가 어른거린다. 술도 몇 잔 마신 터다.

“회사 다닐 때 말야.” 그의 눈치를 본다.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회사 다닐 때 저고리 안에 숟가락, 젓가락을 달고 다녔다는 데 사실이야?” 벌써 폭소를 터뜨릴 준비를 한 얼굴표정이다. “누가 그래요? 내가 뭐 전기 기사인가요. 그런 일 없어요.” 그의 대답에 못 믿겠다는 투다. “식당에서 회식을 하기 전에 숟가락을 불에 구웠다는데….”

그 말은 맞다. 그는 평소 식당의 청결에 대해서 대단한 불신을 품고 있어서 부서 회식 자리에 합류하면 슬그머니 숟가락, 젓가락을 가스불에 구워 소독을 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다. 이것을 훔쳐 본 동료들이 과장해서 소문을 낸 모양이다. “끓인 음식은 그냥 넘어가는데 물잔이나 빈 그릇, 숟갈, 상추 이런 것은 지금도 난 안심 못해요.”

부장은 그가 저고리 안에 진짜로 그것들을 끼고 다녔는지가 더 궁금한 표정이다. “그러니까 숟가락, 젓가락 같은 걸 끼고 다니지 않았단 말이지?” 그가 “아니라니까요.” 몇 번이나 말해도 무언가 미심쩍어하는 얼굴이다. 부장은 그의 사적인 비밀을 마침내 고백받고 싶은 참인데 그가 하는 대답이 영 마뜩찮은가보다. “했으면 했다고 하지요. 뭐 그게 흉이라고 숨기겠어요.”

그 시절 식당에 가면 저절로 주방으로 눈길이 갔는데 한번은 다른 사람이 물린 음식상에서 주방 담당이 남은 반찬들을 집어 도로 반찬통에 넣는 것이 그의 눈에 띄었다. 기겁했다. 그런 것은 약과다. 일식집에서 다 먹고 남은 회 몇 조각을 재사용하는 것도 보았다. 맥주잔을 세제를 푼 물에 두어 번 담갔다가 꺼내는 것도 보았다. 그런 장면들이 잔상에 남아 식당에 들어서면 그는 늘 긴장했다.

그의 결벽증은 회사 다닐 때 이미 소문이 난 터다. 그 소문이 부풀려져서 사람들이 그를 이야깃감으로 삼은 것 같다. 몸이 약한 그는 그런 행위들은 일종의 방어적인 본능이라고 위안한다. 꺼림칙한 것을 못견뎌하는 그가 그런 식으로 조심하지 않았다면 잦은 병치레를 했을지 모른다.

그는 음식은 병원의 수술도구처럼 청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명한 호텔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린 사람도 있다.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요리사들이 화장실을 드나들 때 옮겨온 대장균 때문으로 밝혀진 사례다. 하기는 식당들이 다 엉망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껏 숱하게 그도 역시 가족 외식을 해 온 터다.

‘대충 남 하는 대로 먹고 살지 뭘 그리 타박이냐’고 살짝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기는 모르는 것이 약이란 말도 있다. 옛날 어느 양반이 며느리의 밥상을 기다리다가 부엌을 살짝 들여다보았더니 그 순간 부엌 바닥에 떨어진 오이 조각을 주워 입술로 닦아 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단다.

“며늘아기야, 음식은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 며느리 대답이 “안 보시면 깨끗하옵니다.” 이건 그저 재담이고, 실인즉 아직도 식자재의 안전성, 조리 과정의 청결, 주방 기기들의 위생 면에서 고쳐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그가 일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청결한 느낌이 들어서다. 한데 이것도 여름에는 속된 말로 본전치기다. 썩 내켜하지 않는다. 요즘 모모 하는 마트에 가면 ‘신선 식품’ 코너가 따로 있다. 그와 같은 예민한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모른다. 이렇게 조심하는 데도 엊그제는 된통 걸려 심한 설사를 했다. 약 한 봉지로 낫기는 했지만 그에게 다시 음식 조심을 다짐하는 사건이 되었다.

유별난 그의 음식 타박은 아들 녀석까지도 이따금 화제로 삼는다. 몇 년 전 캐나다로 이민 간 회사 후배네 집에 그의 아들이 며칠 유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후배가 말했단다. “네 아버지는 말야. 식당에 가면 상추를 물로 다시 씻어서 먹었다고.” 매사에 결벽이 있는 사람이라고 좋게 말하다가 헛소문을 냈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나중에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는데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야기가 재미 있다나. 이 이야기를 아들 녀석은 잊어버릴 만하면 꺼낸다. 그가 사실 보도가 아니라고 해도 웃음거리로 삼는다. 하긴 뭐 식당 결벽증을 전설처럼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이다. 다소 과장된 소문이라고 해도 결벽증만큼은 사실이므로.

맛보다는 위생 청결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그의 이런 태도를 보고 ‘적당히 더러운 음식을 먹어야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람도 있다. 위생을 따지지 않고 대범하게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나치게 더러움으로부터 자기를 격리하는 것은 일종의 병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 의사로 지냈던 H선생이 한 말을 그는 기억한다.

“여긴 아프리카보다 못한 식당들도 있어요.‘ 공정, 혁신, 정의라는 말들 밑바탕에는 청결이라는 뜻도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먹는 것 말고 생각하는 것에도 말이다. 이 사회의 부와 권력, 인간관계에서 ’청결‘이 실현되면 그땐 그와 같은 괴짜도 밖에 나가서 선진국 시민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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