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뻐꾸기 소리
새벽 뻐꾸기 소리
  • 문틈 시인
  • 승인 2018.07.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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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에 눈이 떠졌다. 날씨가 너무 무더웠던 탓인가보다. 목에 땀이 차있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귀에는 어딘가에서 자꾸만 무슨 규칙적인 소리가 들린다. 그쪽으로 귀가 모아진다. 무슨 소리일까. 정신을 가다듬고 들어보니 앞 숲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 같다.
이 신새벽에 뻐꾸기 우는 것이 맞아, 하는 생각에 거실로 나가 건너 편 숲 쪽으로 귀를 내민다. 분명 뻐꾸기 소리다. 믿겨지지 않아서 귀를 쫑긋하고 계속 들이민다. 뻐꾹, 뻐꾹. 뻐꾸기가 이런 시각에 우는 것은 당최 몰랐던 일이다. 하도 이상해서 잠이 다 달아나버리고 만다. 세상에, 이른 새벽에도 뻐꾸기가 울다니.
지난 5월 하순부터 여름이 한창인 지금까지 날마다 건너 편 숲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짝을 찾는 걸로만 알았는데 알아보니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처음엔 짝을 찾느라 열심히 울어대다가 뱁새 같은 작은 새의 둥지들에 몰래 알을 낳아놓고 새끼가 부화하고 나면 뱁새더러 먹이를 열심히 물어나르라고 독려하느라 소리를 낸단다. 설마하니 그럴까싶다.
하여튼 뻐꾸기가 7월 한여름에 짝을 찾는 것은 아닐 테고 분명 다른 이유로 운다는 짐작은 간다. 더 믿기지 않는 것은 뻐꾸기가 저렇게 밤낮으로 울어대는 또 다른 이유는 남의 둥지에 있는 새끼에게 ‘엄마 여기 있어.’하고 신호를 보낸다는 거다. 너를 먹여주는 뱁새가 네 어미가 아니라고.
여름이 끝나면 뻐꾸기는 다 큰 새끼들을 불러내 저기 동남아시아 땅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겨울을 난다. 뱁새는 다 키운 새끼새가 날아가고 나서야 ‘이런, 내 새끼가 아니었구나.’ 알아차릴지 모른다. 만일 뱁새한테도 생각이 있다면 속임수를 당한 바보짓에 나무 등걸에 머리를 찧어댈 것만 같다.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라는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뻐꾸기가 둥지에서 제 새끼들을 기르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놓고는 부화-양육을 맡긴다. 자기는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감쪽같이 뱁새를 속여 자식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뻐꾸기는 생각할수록 참 기묘한 새 같다. 뻐꾸기의 이런 행태를 욕할 것까지는 없다. 자연을 굴리는 우리가 모를 어떤 거대한 법칙 같은 것이 있어 그렇게 허용하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자연은 스스로 법칙대로 움직인다. 아마도 그 법칙이란 것은 모든 생명은 번식하라, 그 한 문장이 아닐까.
뱁새 입장에서 보면 공들인 자식 건사가 결국 헛일이 되고 만 셈인데 이런 비슷한 일이 인간 세상에도 찾아보면 드물지 않다. 꼭 자기 자식을 남에게 양육시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 자기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남의 손을 빌어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일은 쌔고 쌨다.
인간의 행태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자연의 생명들이 사는 방식을 하나하나 훔쳐온 것 같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덩굴 식물처럼 남을 감고 올라가기, 거미처럼 함정을 쳐놓고 기다리기, 솔개처럼 높은 데서 빙빙 돌며 먹이 찾기, 뭐,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그런 것을 볼 때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 것은 좀 오만한 생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냥 모든 동식물의 생존 방식들을 집합한 종합 지능체라고 할까.
요즘 우리나라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연말에 통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신생아 출산이 30만 명이 좀 넘을까말까, 그런 예측이다. 뻐꾸기 식으로 아기를 낳아놓고 누가 대신 길러준다면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하여튼 뻐꾸기식 방안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집을 무상 배려한다, 무상 교육을 한다 해서 신생아수가 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이 기르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교감이라기보다는 이제 노역에 가까운 일로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현대 사회 의식이랄까, 하여튼.
올 여름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듯하다. 벌써 두 달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들어왔다. 산골짝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뻐꾸기 소리를 매일 들으며 사는 것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다. 뻐꾸기 소리를 자연 선풍기처럼 여기며 폭염을 견디고 있다.
뱁새나 뻐꾸기 새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뻐꾸기 소리는 인간의 귀에는 애틋한 느낌을 자아낸다. 한번은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바로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암갈색 날개에 꼬리가 긴 뻐꾸기가 앉아 우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멀리서 우는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뻐꾸기 소리는 울고 나서 되울림 소리가 이어진다. 뭐랄까, 조금은 애절한 듯한 느낌,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느낌.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다.’는 속담이 있다. 그 말대로 양력 7월내 뻐꾸기 소리가 한창이다. 언제까지 뻐꾸기가 울어댈지 유심히 관찰해볼 작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새소리가 인간의 귀에 친화적이라는 것. 새들이 혹여 그들끼리 짜고 각양각색으로 소리를 달리 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필경 무슨 조화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폭염에 뻐꾸기 소리는 한 줄금 소낙비처럼 시원하다. 뻐꾹, 뻐꾹. 폭염을 식히는 찬 물소리처럼 들린다. 뻐꾸기, 너, 한참 더 울어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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