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3) 불일암증인운석(佛日庵贈因雲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3) 불일암증인운석(佛日庵贈因雲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7.10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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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이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

새벽이면 어김없이 산허리를 휘어 감는 구름을 본다. 허리 부여잡고 휘휘 감고 도는 구름의 모습은 화가에겐 멋진 화제가 되었으며, 시인에게는 좋은 서정적인 글감이 되었다. 산허리 감고 도는 모습은 오랜만에 친구를 부둥켜안은 듯 감칠맛을 낸다. 자연과의 좋은 대화이자 속삭임이다. 이것이 시의 맛이자 시적 감흥이리라.

스님을 찾아가는 손님은 스님이 묻혀있는 구름을 쓸지 않았기에 구름을 송화(松花)가 만발했다고 표현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佛日庵贈因雲釋(불일암증인운석) / 손곡 이달

구름에 묻혔어도 스님은 쓸지 않고

지나던 손이 와서 가만히 문을 여니

온 산에 송화 만발에 쇠었겠지 아마도.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부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온 산이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佛日庵贈因雲釋)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절집이 구름 속에 완전하게 묻혀 살아가기로 / 구름이라고 하면서 스님은 비로 쓸지를 않네 // 지난 손이 와서야 문을 열어 살펴보니 / 온 산의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불일암 인운 스님께 드린 글]로 번역된다. 백의(白衣)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하얀 파도만 봐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고, 아리랑 한 곡만 들어도 순백한 민족혼과 함께 흰색을 연상하며 민족의 대동단결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흰 색이라는 착상에 의한다. 시인이 암자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을 찾아간 계절이 한 겨울이었다. 절집이 구름 속에 완전하게 묻혀 살아가기로 구름이라고 하면서도 스님은 비로 쓸지를 않다고 했다. 온 산이 하얀 천을 깔아놓은 듯 소복하게 눈으로 덮여있는 시적 배경 속에 흰 구름도 흰 눈으로, 흰 눈도 떠가는 흰 구름으로 착각하게 되는 멋진 착상을 연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화자는 날마다 스쳐지나가는 구름을 스님이 비를 들고 쓸 리 없다고 한다. 아침에 소복하게 내린 눈을 스님이 쓸지 않았던 것은 아마 흰 구름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날리는 흰 송화 가루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노스님의 머리가 희어진 것도 이런 원인에서 찾는 시적 화자의 기발한 착상도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구름 속에 묻힌 절집 구름이라 쓸지 않고, 손이 와서 문을 여니 송화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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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어머니가 천출이어서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원주 손곡으로 옮겨와 살았기에 손곡을 호로 삼았다. 어렸을 때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이 매우 많았다. 최경창, 백광훈과 종유하였다.

【한자와 어구】

寺: 절, 사찰. 在: 있다. 白雲中: 흰 구름 가운데 있다. 白雲: 흰 구름. 僧: 중, 스님. 不掃: 쓸지 않는다. // 客來: 손님이 오다. 門: 문. 始開: 비로소 열다. 萬壑: 일만 구렁, 곧 온 산. 松花: 송화가 만발하다. 老: 늙다, 곧 송홧가루가 흰색이니 늙은이의 머리카락으로 상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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