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과 출세를 재해석하자
등용문과 출세를 재해석하자
  •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인문사회부장
  • 승인 2018.07.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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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린 영혼과 몸이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은 왜 출세(出世)에 연연하는가?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용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세는 삶의 본질이 아니고 허상이다.

출세(出世)는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 사회적으로 높이 되거나 유명해짐, 제불(諸佛)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하여 사바세계로 나옴, 세상을 버림’ 등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출세의 의미를 두 번째 해석으로 명문화하였다. 그 후로 많은 사람은 있지도 아니한 그 허상인 출세를 향해 불나방처럼 춤을 추고 있다.

출세라는 단어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하여 거기에다 등용문이란 단어를 덧붙인다.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이다. 이 근처는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 있어 급류를 차오르는 큰 고기도 여간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는 용으로 화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고 했다.

용(龍)은 상상의 동물일 뿐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출세 또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그냥 세상(世)으로 나갈(出) 뿐이다. 나가서 주어진 직분을 다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출세이다.

우리 이제 겸허해지자. 이젠 마음속의 용을 버리자. 그 용을 버렸을 때 내 마음도 잔잔해지고 우리 마음도 평온할 수 있다.

잠시 장자의 ‘어부편’에 나오는 우화를 읽어보자.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기 발자국 소리를 싫어했다. 그는 이것들을 떨쳐버리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발을 내디딜수록 발자국 소리는 더욱 늘어났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계속 따라왔다.

그는 달리는 속도가 늦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탈진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늘 속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멈춰 서면 발자국 소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어리석음이란 이런 것이다.

우린 그림자와 발자국을 벗해야 한다. 그렇게 벗하며 사는 것이 등용문이요, 출세이다. 있지도 않은 허상을 좇다가 자신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잠시 쉬면 그만인 것을 허상을 향하다가 결국에 파국을 맞는다.

혹 그림자와 발자국이 나의 벗이 아니라면 잠시 그늘에서 쉬면서 또 다른 삶을 창조하면 된다. 이 시간에도 용문을 향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 무욕으로 삶을 맞이하라. 그러다보면 삶의 허상 아닌 본질이 그대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길을 겸허하게 걸어가라.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를 기억하자. 옛날 미국 인디언들은 아무리 바빠도 세도나(Segona)라는 지역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잠시 쉬어 갔다고 한다. 몸이 너무 빨리 달려와서 몸과 떨어진 영혼이 뒤쫓아 오게 하기 위해서란다.

과연 우리는 영혼과 몸이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과연 우린 등용문과 출세를 재해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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