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15)
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15)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6.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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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경원에서 유배살이 한 윤선도는 1618년 겨울에 경상도 기장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그런데 이배(移配) 사유가 참 희한하다.

“이때 많은 선비들이 시사(時事)를 말하다가 북쪽으로 유배를 당했는데, 이이첨이 이것마저도 불쾌하게 여기고는 말하기를 ‘북쪽으로 귀양 간 사람들이 호지(胡地 오랑캐 땅)에 가까이 있는 만큼 필시 오랑캐와 내통 할 것이니, 모두 남쪽 변방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윤선도)도 기장(機張,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이배(移配)되었으니, 무오년(1618) 겨울의 일이었다.”1)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종성에 유배 중인 김시양도 1618년에 영해(경북 영덕군)로 이배되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윤선도는 홍원에서 기생 조생을 또 다시 만났다. 그가 지은 시 두 수가 말해준다.

노방의 사람에게 장난삼아 지어 주다 무오년(1618, 광해군10) 〔戲贈路傍人 戊午〕2)

그대가 소유가(少游歌)를 애창하지 아니하니

내 어찌 고운 얼굴의 보조개를 보기 좋아하랴.

단지 몸을 비단 옷 속에 간직함을 기뻐하는데

말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구나.

汝非愛唱少游歌

我豈耽看梨頰渦

只喜身編羅綺裏

語言敢與世殊科3)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윤선도가 반한 것은 조생의 얼굴이 아니라 언행이었다.

이어서 윤선도는 “홍헌의 조랑에게 답하다 무오년(1618) 〔答洪獻趙娘 戊午〕” 시를 지었다.

한자(당나라 한유)가 노승 태전에게 글을 남겨 준 뒤로

세간의 헐뜯는 평이 있는 지 어느 덧 천년

나도 지금 그대가 객(客)을 알아봄에 감격하여

다시 가요를 지어서 짧은 종이에 쓰노매라.

당나라 한유는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친하게 지냈던 노승(老僧) 태전과 작별하면서 글과 함께 자신의 의복을 남겨 주었다.

1618년 겨울에 윤선도는 경상도 기장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일일화(一日花)를 읊다”를 지었다.4)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한 꽃으로 두 아침 햇살 보기가 부끄러워서라네.

날마다 풍도(馮道)처럼 양지만 쫓는 해바라기만 있다면

세상의 옳고 그름(是非)을 그 누구 있어 분별할까

甲日花無乙日輝

一花羞向兩朝暉

葵傾日日如馮道

誰辨千秋似是非

이 시는 마치 1618년 겨울 광해군 시대를 보는 것 같다. 영구집권을 꾀하는 대북파 이이첨 일파는 인목대비를 서궁(지금의 덕수궁)에 유폐시키고 충신들을 모조리 유배시키고 죽였다. 폐모를 반대한 이항복도 북청으로 유배 가서 1618년 5월에 별세했고, 이원익도 유배상태였다.

조정 대신들은 오로지 풍도(馮道)처럼 시비 분별도 없이 광해군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해야 했다.5)

이렇게 대북파가 탄압정치로 신하들의 입을 틀어막고 맹신적인 충성을 강요하자 서인과 남인, 심지어 소북마저 등을 돌렸다.

한편, 1619년 여름에 양아버지 관찰공 윤유기가 세상을 떠났다.6)

1616년 12월 21일 윤선도가 ‘병진소’를 올린 이후 윤유기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향리로 돌아가 우울하게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향년 66세였다.

윤선도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유배 중이라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양부의 별세가 자기 탓이라는 자책감이 더했으리라. 부고를 받자 윤선도는 제수(祭需)를 갖추고 제문(祭文)을 지어 지극히 비통한 심정을 달랬다.

 

1) 윤선도 시장(諡狀)

2) 원주에는 ‘이하는 기장(機張)으로 배소를 옮길 적에 지은 것이다. 노방의 사람은 조생(趙生)이다.’라고 적혀 있다

3) 소유가(少游歌)는 남녀의 애정을 다룬 노래를 말하고, 이협(梨頰)은 배의 속살처럼 하얀 얼굴을 뜻한다.

4) 원주에는 ‘이하는 무오년(1618) 기장으로 배소를 옮긴 뒤에 지은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5) 풍도(馮道)는 매우 혼란했던 중국 5대 시대(907-960)에 5개의 나라에서 10명 이상의 황제를 섬긴 양지만 쫓는 해바라기 재상이다.

6) 윤유기는 부친 윤유심의 동생(윤선도의 작은 아버지)인데, 해남윤씨 종가로 입양 가서 윤선도의 양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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