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0) 제야유감(除夜有感)[1]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0) 제야유감(除夜有感)[1]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6.2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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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등불 앞에 가만히 몸을 숨기는구나

섣달 그믐날밤이면 마음이 설렌다. 때때옷도 입고 세뱃돈도 받았다. 선현들은 이를 [제석(除夕)]이라고 하여 큰 명절의 하나로 여겼다. 시인은 제석을 보내기 위해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설레었는데 벌써 언니들은 새 옷을 다림이질하면서 나를 마구 불러댄다. 계절적으로 섣달 그믐이지만 아직도 추위는 큰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렇지만 시인이 보는 눈에는 깜박거리는 등잔불 앞에 추위가 몸을 숨긴다고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除夜有感(제야유감)[1] / 소파 오효원

이슥한 밤이 되어 폭죽 소리 드높아라

새 옷 입은 언니들 연이어서 부르는데

봄 아직 먼 줄 알았는데 등잔 밑에 추위가

爆竹聲高殘漏永      連呼姐姐板新衣

폭죽성고잔루영      연호저저판신의

春從雪後深深見      寒殄燈前落落微

춘종설후심심견      한진등전낙낙미

 

추위가 등불 앞에 가만히 몸을 숨기는구나(除夜有感1)로 번역되는 율()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소파(小坡) 오효원(吳孝媛1889~?)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밤도 이슥한지 오래건만 폭죽소리 드높고 / 새 옷 다리는 언니들이 연이어 부르고 있네 // 눈 온 뒤로 봄 아직도 먼 줄 알았더니 / 추위가 등불 앞에 가만히 몸을 숨기는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섣달 그믐날 밤의 느낌1]으로 번역된다. 소파는 9세 때부터 남자복장을 하고 글방(社塾)에 다녔으며 얼마 안가서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준수한 이마와 둥근 귀, 네모지고 꽉 다문 입술 등 용모부터가 그러했다고 한다. 타고난 기질부터가 여인네들이 하는 일보다는 남자들이 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섣달 그믐날이면 어김없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데 이 종소리를 듣고 있다. 종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폭죽 소리가 들리고 언니들이 벌써 새 옷을 다리는 분주한 모습에, 어린 아이들이 때때옷을 기대하는 밑그림도 그려 본다.

화자는 겨울이 아직 먼 줄만 알았는데, 매서웠던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긴다는 기발한 착상을 한다. 깊은 문학적 상상력을 보게 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매화나무 아래 스며든 봄밤을 따라 움직이고 / 차 주변의 어릴 적 꿈 연기 따라 사라지네 // 칠 푼은 번뇌요 세 푼은 근심걱정이러니 / 내일 아침에는 허리둘레 한 움큼 줄겠네]라고 했다. 새해가 되면 번뇌와 근심 때문에 허리둘레가 한 움큼쯤은 줄어 들 것이라는 말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밤늦도록 폭죽소리 드높고 언니들 연이어 부르네, 봄은 아직 멀었는데 추위 다투며 몸을 숨기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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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4참조] 소파(小坡) 오효원(吳孝媛:1889~?)으로 개화기의 여류문인이며 외교활동가이다. 9세부터 남자의 복장을 하고 글방에 다니며 공부를 하였으며 얼마 되지 않아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1898(광무 2) 10세 때에는 백일장에서 일등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한자와 어구

爆竹聲: 폭죽소리 터진다. 高殘漏永: 밤도 이슥하다. 連呼: 연이서 부른다. 姐姐: 누이들. 여기선 언니들. 板新衣: 새 옷을 다림질하다. // : . 從雪後: 눈이 온 뒤에. 深深見: 깊이 깊이 보이다. 뭔 줄을 알다. 寒殄燈前: 추위가 등불 앞에 꺼진다. 落落微: 떨어져 희미하다. 곧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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