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야기(5)
베트남 이야기(5)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8.06.19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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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베트남을 알려준 사람들

한국은 베트남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의 파병 반대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내는 박순천, 김홍일 등 야당의 수뇌들마저 파병을 찬성하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과 학원가에서 반대 의견들이 있었지만, 회오리같이 요동치는 파병의 큰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영희, 강정구, 한홍구, 이기홍 등이 파병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었지만 파병이 국위선양과 경제발전의 돌파구로 분식되는 가운데, 1965년 말 비둘기부대, 맹호부대, 청룡부대 등이 월남에 속속 파병되기에 이르렀다. 6000여명이 넘는 전사자를 낳고 미국의 용병이라는 오명을 피할 길 없었던 월남 파병. 그러나 한국의 경제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을 의심하는 평가도 없는 성싶다.

한국과 월남이 전쟁을 해야 할 하등의 역사적 조건이 없었음에도 월맹은 적성국가가 되고 호치민은 적성국가의 수뇌가 되었다. 김일성을 수장하라는 등의 끔찍한 구호도 서슴지 않았던 박정희의 통치하에서도 호치민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보이지 않았다. 주월 사령관으로 이름을 날린 채명신 장군도 그의 회고록에서 호치민이 반프랑스 독립투쟁의 국민적 영웅이며 애국자라는 인식과 명성이 베트콩들의 강점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역사는 윤리와 만나야 한다고 가치 지향의 역사관을 거침없이 말하는 「왜 호치민인가?」의 저자 치과의사 송필경은 베트남 사람들은 국부 호치민을 ‘호 아저씨’라는 친근한 애칭으로 부른다고 귀뜸해준다.

호치민은 의심할 바 없는 월남의 국부의 위상을 누리고 있는 그야말로 친근한 ‘호 아저씨’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사이공市로 불렀던 패망 월남의 수도가 호치민市가 된지 이미 오래다. 과거 베트남 전쟁 중에 미 해병 훈련소에서 베트남 전장에 보낼 풋내기를 조련하는 고참 상사는 그의 신병들에게 ‘호치민은 후레자식 임질 갈갈이에 이까지 있다네’라고 하는 저질 구호를 외치게 하고 점호 때는 ‘우리가 하는 일은 죽이는 것, 죽이는 것, 죽이는 것’이라고 고함을 쳤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영화 <풀 메탈 자켓>의 한 장면이라고 한다.

명나라 말기 유적 장사성이 세웠다는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라고 적힌 끔찍한 비석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많은 역사상 인물들이 요란한 삶의 증거들을 남기고 그 졸도들이 부화뇌동한 것을 우리들은 신물이 나게 보아 왔지만, 호치민은 유명인들이 거드름을 피우듯 매사에 준비된 인간인 듯 한 자신의 과거를 영웅화, 현인화하는 따위의 글을 쓰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명성을 얻기 시작한 무렵과 그 이후에도 성장 배경을 조작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당면의 문제에만 충실했다. 한국에 호치민을 소개하는 인사들도 그의 높은 식견과 자세를 가감없이 전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결코 패거리 권력집단을 만들지 않고 공산주의자이면서 결코 공산주의를 하지 않은 민족주의자였을을 전하고 있다.

베트남의 내일은 베트남인들의 희생과 좋은 영도집단의 향도로 밝은 미래가 보장된 것 같아, 부러움에 곁들여 축복을 보낸다. 그런데 삶은,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플 수 없는 퍼즐 덩어리인 모양이다. 뜻밖에 통일 베트남이 그 이웃나라들에게는 아픔이 되고 불안이 되고 있는 현실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성싶다.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를 쓴 운동권 출신의 유재현은 베트남 주변국의 역사와 현실을 슬픈 그림자로 우리에게 전하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 한사람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과 군사적 지배, 라오스에 대한 군사적 개입, 경제 정책의 실패, 베트남 공산주의식 관료주의와 군사주의의 만연 등은 주변여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호치민이 남긴 과오의 재생산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호치민이 항상 틀렸다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옳았던 것도 아님을 말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프게 지적한다. 과오에 대한 평가없이 호치민 사후 그에 대한 베트남식 영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과오가 묻혀버리고 재생산되었음을 문제로 지적한다.

역사가 윤리와 만나야 한다는 당위적 소망을 갖고서 현실을 진단하면서 내일에 대한 좌표를 제시하는 것은 도덕적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고 해답의 명쾌함과 간결성도 주지만, 인간의 욕망들이 엉켜 연출하는 역사에 즉답을 찾는 조급증은 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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