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9) 도여원월출산(到女院月出山)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9) 도여원월출산(到女院月出山)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6.14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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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이나 아닐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드네

고국과 고향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에겐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 가고 싶고 어렸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래서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한다. 명절만 되면 민족의 대이동이라 하여 고향을 찾아 나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추억이 서려있는 그 곳의 향수가 묻어나는 내음을 한껏 맡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운 고향이라고 한다. 한 시인이 오랜만에 고향을 밟고 나서 혹시 꿈속은 아닌가 반문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到女院月出山(도여원월출산) / 옥봉 백광훈

두 해에 서울 생활 고향 찾아 정겹고

고향의 진면목을 오늘 와서 바라보니

두려움 꿈속 아닐까 고개 들어 다시 보네.

二年辛苦客秦城 夢見鄕山別有情

이년신고객진성 몽견향산별유정

今日却逢眞面目 擧頭猶怕夢中行

금일각봉진면목 거두유파몽중행

 

꿈속이나 아닐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드네(到女院月出山)라고 쓴 칠언절구다. 작자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두 해 동안이나 서울 땅을 나그네로 떠돌 때에는 / 꿈에 보았던 내 고향 산은 얼마나 정겨웠던가 / 오늘에야 돌아와서 문득 (고향의) 진면목을 만나 보니 / 꿈속이나 아닐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드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해남(=여원)에서 월출산을 바라보며]로 번역된다. 삼당시인을 찬양해 보는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시문의 진정한 맛 당풍을 앞세워서 / 비유법 상징성에 여독을 풀어가니 / 고전을 새롭게 한 현실 내일 꿈을 향하리]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해남에서 자랐으며, 관서별곡(關西別曲)으로 유명한 광홍(光弘)의 아우다.

시인의 작품은 전원의 삶을 다룬 작품이 많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안정과 평화로 가득 찬 밝은 분위기를 이룬다.

두 해 동안이나 서울 땅을 나그네로 떠돌 때에는, 꿈에 보았던 내 고향 산은 얼마나 정겨웠던가라고 했다. 이정구가 시인의 ‘절구’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화자는 고향 장흥을 찾는 것이 아니라 2년만에 자란 해남(여원)을 찾았다. 오늘에야 돌아와서 문득 고향의 진면목을 만나 보니 꿈속이나 아닐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든다고 했다. 꿈길에서 보았던 고향이 얼마나 정겨웠던가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율시보다는 오히려 절구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는 작품의 진수를 맛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두 해동안 서울 떠돌이 꿈의 고향 정겨워라, 오늘에야 진면목 보니 꿈속 아닌가 고개를 든다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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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22세에는 진도에 귀양와있던 노수신에게 배웠다. 28세인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포기, 정치에 참여할 뜻을 버리고 산수를 방랑하며 시와 서도를 즐겼다.

【한자와 어구】

二年: 2년. 辛苦: 떠돌아다니다. 고생하다. 客: 나그네. 秦城: ‘진나라 성’이나 여기선 ‘서울 땅’을 뜻함. 夢見: 꿈 속에서 보다. 鄕山: 고향산. 別有情: 유별난 정겨움이 있다. // 今日: 오늘. 却: 문득. 逢: 만나다. 眞面目: 진면목. 擧頭: 머리를 들다. 猶: 오히려. 怕: 두렵다. 夢中行: 꿈 속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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