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8) 송강정(松江亭)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8) 송강정(松江亭)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6.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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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소나무는 밤이 깊도록 소리를 내누나

인적이 뚝 끊긴 밤이 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슬픔도, 기쁨도 이 시간에는 회상하게 된다. 개는 짖어대고 닭은 새벽의 정적을 흔들어 댄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어찌 그리 잠 못 이루는 밤을 서성이게 하는지 울적한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다. 별들도 곤한 잠에 취해 있는데 바람과 소나무는 잠도 자지 않았는지 정자를 찾았던 주빈을 아마 생각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송강정을 찾았던 주빈이 이런 때를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松江亭(송강정) / 송강 정철

밝은 달 비추는데 주인은 어디가고

낙엽은 사립문을 살며시도 가리는데

나무들 바람 소나무 밤 깊도록 노래해.

明月在空庭      主人何處去

명월재공정      주인하처거

落葉掩柴門      風松夜深語

락엽엄시문      풍송야심어

 

바람과 소나무는 밤이 깊도록 소리를 내구나(松江亭)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휘엉청 밝은 달이 빈 뜰을 다소곳이 비추는데 / 주인은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더란 말인가 // 강을 재촉하는 낙엽은 사립문을 살며시 가리고 / 바람과 소나무는 밤이 깊도록 소리를 내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송강정에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만년에 그의 정자 송강정을 지어 놓고 시간을 내어 여기에 올라 시를 지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 정자의 주인이면서 밝은 달이 빈 뜰을 비추고 있다고 하면서 주인은 어느 곳으로 갔는가 하고 반문하는데서 시적인 묘미를 찾는다.

이 같은 반어법은 시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휘영청 밝은 달이 빈 뜰을 다소곳이 비추는데, 주인은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더란 말인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인 자신이 묻고 시인 자신이 대답하는 꼴을 만들었다. 그래서 시인들은 이런 방법을 많이 원용한다.

시적인 주위의 분위기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의 시상은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이 사립문을 가리면서 오는 손과 머물러 있는 주빈의 갈 길을 붙잡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했다. 매서운 북풍 쪽을 향하는 배경 삼아 있는 송강정엔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에 맞춰 밤 깊도록 소나무가 소리를 낸다고 했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고 했듯이 경(景) 속에 흐르는 정(情)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밝은 달은 푸른 뜰 비춰 주인은 어느 곳에, 낙엽만이 사립문 가리고 풍송들이 소리를 내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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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정철(鄭澈: 1536~1593)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51년(명종 6) 원자 탄생의 은사로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 아래로 이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여년을 보냈다.

【한자와 어구】

明月: 밝은 달. 在: 있다. (처소격으로) ~에 있다. 空庭: 빈 뜰. 빈 정원. 主人: 주인. 何處去: 어느 곳으로 갔나. [何]로 인하여 의문문의 성격을 갖고 있음. // 落葉: 낙엽. 掩: 가리다. 柴門: 사립문. 風松: 바람과 소나무. 夜深: 밤이 으슥하게 깊도록. 語: 말하다. 여기서는 ‘소리를 내다’로 해석함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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