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넘어 나와 너로
우리를 넘어 나와 너로
  •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인문사회부장
  • 승인 2018.05.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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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이름으로 개별화하고 파편화해야 한다.
김홍도 '길쌈'
김홍도 '길쌈'

오늘도 K규수는 힘들게 하루를 마감한다. K규수는 미소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유는 단순하다. 팔딱팔딱 살아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편성에 얽매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개별성을 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K규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K규수는 양반집 처자다. 지금 같으면 금수저 집안이다. 어릴 적부터 글공부를 배웠다. 예절 또한 몸에 익혔다. 바느질이며 수놓기 사군자 그리기까지 다 체화하였다.

이팔청춘이 되어 낭군을 만났다. 그것도 가문 좋고 문벌 좋은 양반집 자제였다. 물론 집안에서 점지해 준 만남이었다. 자의적인 만남보다 인위적인 만남이었다.

축복받은 혼례를 마치고 낭군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K규수는 행복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는 개별적인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삶과 개별적인 삶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제도나 힘이 작용하여 그 범주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편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제도나 힘의 작용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일상을 그려나는 것을 개별적인 삶이라 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K규수는 여성의 삶을 강요받았을 뿐 여자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얌전하고 고요한 숙녀로 길들여졌다. 혼례 이후에는 현명한 어머니와 착한 아내로 고착된 삶을 살았다. 특히 혼례 이후의 가정생활이 문제였다.

이른바 그녀는 가문을 잇는 성(性)이었으며, 남편에게 쾌락을 주는 성적 도구였다. 시종일관 남자에게 복종하는 삶만 살았다. 삼종지도(三從之道 -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복종,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복종, 남편과 사별 후에는 아들에게 복종)와 같은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삶을 살았다.

K규수에게는 참삶이 없었으며 오직 규격화된 삶만 있었을 뿐이다. 그녀 또한 고귀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녀 또한 개별적인 삶을 노래한 권리를 가졌다. 문제는 이념과 명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보편성이 개별성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활했다는 것이다.

어찌 개별적인 삶이 없는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단어가 동행하겠는가? 어찌 자유로운 삶이 없는 그녀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뒤따르겠는가? 어찌 강요받은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그런 국가에는 오직 억압과 부자유만 있을 뿐이다. 그런 사회에는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을 뿐이다. 그런 가정에는 생각은 없고 행위만 있을 뿐이다.

늦었지만 우린 K규수에게 가치 있는 삶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녀가 인류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여성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성(性)은 남성만 위한 성이 아니라여성을 위한 성(性)임과 동시에 양성(兩性)을 위한 성이라 사실이다.

이젠 ‘우리’는 ‘나’에게 자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되고 이념화된 개념을 나라는 이름으로 개별화하고 파편화해야 한다.

그랬을 때 K규수들은 행복과 희망 그리고 자유와 사랑을 뜨거운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정 김광호/여양고등학교 인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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