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야기(3)
베트남 이야기(3)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8.05.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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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유사성

한반도의 역사를 그 지정학적 조건에서 살필 때,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강대국 의존형의 역사가 오히려 우리의 자주의식을 제고해왔을 긍정적 측면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공동체 생존을 위한 사대의 불가피성 또한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조건이었음을 인정할 밖에 없었다. 한반도의 완충지대로서의 국제적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 남북회담, 북미회담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지정학적 역사성이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한다.

완충지대는 강대국들의 힘이 흘러들어오는 낮은 지대가 됨으로 외세가 소용돌이 칠 가능성을 배태하기 때문에, 낮은 지대의 완충 성격을 벗어나는 분수령화를 모색하여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게 물의 충돌을 막아주고 물의 흐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높은 지대화를 꿈꾸게 된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했던 한국의 동북아균형자론도 그러한 바람의 한 표현이었지만, 분수령화의 일차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몫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약 없는 통일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다짐하여 왔던 것이다. 베트남의 통일이 반공교육에 찌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이유도 자기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 통일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거대 중국의 울타리 국가의 위치에 있었다. 베트남은 중국의 발치에 있었고 한국은 중국의 옆구리에 있어 주체화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중국문화권의 한 부분임을 피할 수 없었다. 한반도는 중화세계질서의 중심부에 근접해 있었고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어 중국의 정치․문화와의 긴장관계가 그 수준을 달리하고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어서 중국은 똑같은 외세로 주권 제약의 외부적 조건이었지만, 그 긴장도는 다를 수밖에 없어 그에 따라 두 나라의 저항의 수준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베트남의 관계에 있어서 베트남은 중국의 침략을 물리친 여러 차례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비해서 한국은 중국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격퇴한 기록보다는 「사대교린」의 외교적 정형화에서 보다시피 중국은 조정과 수용의 대상으로 명실상부한 선진국가에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영세불망의 은혜로운 국가가 되었다. 중국문화권 안에서 베트남은 한국보다 높은 자주성을 누릴 수 있어 베트남 인민들의 자기 운명에 대한 결정욕구도 그만큼 높을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듯 세월은 인간을 순치할 수 있고 삶의 굴곡은 우리들을 비겁하게 만들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존감은 공동체의 희망이 살아 숨 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깃발로 삼은 향도가 공급하는 맑은 마중물이 공급되는 동안, 소망이 희망이 되어, 희망이 이정표가 되어 우리들의 미래는 열리기 마련이라는 낙관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의 경험이 곧바로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닌 성 싶다. 베트남 인민들의 높은 민족자존감과 항불, 항중, 항일, 항미의 항쟁과 저항이 점철되는 베트남의 현대사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곧바로 모방할 수 없는 한국의 역사성과 그 우여곡절의 궤적이 있다. 우울하고 칙칙한 궤적이지만, 그 곳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출구임을 어찌 할 것인가?

며칠 전 5.18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뜨거운 맹세를 함께 하였다. 분명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안다. 그런데 그 세월이 백년도 아니고 천년도 아닌 기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를 성찰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병자호란도 겪었고 동학혁명도 겪었고 의병전쟁도 겪으면서 찾으려고 했던 출구를 우리들은 얼마 전 촛불혁명을 통해서 찾았다. 백마 타고 온 왕자도 없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의 임도 없이 그냥 그만그만한 우리 모두가 나서서 봄날의 조국을 뒤덮었던 진달래처럼 한 떨기 한 떨기 촛불이 되어 기필코 출구를 찾아 여기 오늘에 이르렀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선열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이제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남북회담, 북미회담은 성공할 것이다.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정치적 환경이 여기 광주에서 있었고, 이제 세계사적 회담이 촛불혁명의 후광을 얻었으니 성공은 필연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북미회담이 뒤틀리더라도 남북회담의 결과가 예시하는 민족, 민주, 민생의 동력이 우리 모두의 안팎에서 전개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하고 베트남은 영원한 우리의 이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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