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6) 자영(自詠)[2]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6) 자영(自詠)[2]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5.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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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이 청아한 시 한 수를 읊조렸더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시인묵객과 선비들이 많았다. 성인군자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일기를 써보라. 그 속에는 반성과 재구성이란 진리가 숨어 있으리니’라고 자신 만만하게 말한다. 시인이 주렴을 들어다 보니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고 옷깃을 풀어헤치니 냇바람에 시원하다. 이러한 때에 청아한 시 한수를 음영했더니 매 구절마다 한가롭기 그지없다고 읊었던 율시 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詠(자영)[2] / 송암 권호문

주렴을 들어 보니 들에 지난 빗줄기

옷깃을 풀어헤치니 냇바람 시원하고

청아한 시 한 수 읊어 구절마다 한가롭네.

簾捲野經雨    襟開溪滿風

렴권야경우     금개계만풍

淸吟無一事    句句是閑功

청음무일사     구구시한공

할 일 없이 청아한 시 한 수를 읊조렸더니(自詠2)으로 번역해본 율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주렴을 들어보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가 내리고 / 옷깃 풀어헤치니 시원한 냇바람이 이네 // 할일 없이 청아한 시 한 수를 읊조렸더니 / 구절구절 이렇게 참 한가로울 수 없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자신을 보며 읊음2]로 번역된다. 시인이 지은 연시조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등이 전한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모난 성격 홀로 고상함을 지켜 /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살지 // 숲속엔 벗 찾는 새소리 맑고 / 섬돌엔 나풀나풀 쌓인 꽃잎들]이라고 쏟아냈다. 자연이 좋아 자연에 취해 사는 시인의 생활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애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시인은 경기체가 [독락팔곡(獨樂八曲)]에서 세속을 잊고 갈매기와 벗이 되어 사는 즐거움을 노래했는지도 모르겠다. 주렴을 들어보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가 내리고, 옷깃 풀어헤치니 시원한 냇바람이 인다고 했다. 지나친 빗줄기나 시원한 바람도 자연과 벗하며 사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다시 시인은 [독락팔곡]에서 서적과 더불어 옛 성현을 벗삼는 즐거움을 노래했을 것이다.

화자의 심정은 결구에서 절정을 보인다. 일없이 청아한 시 한 수를 읊조리고 있으니 구절구절이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없다고 자신의 처지와 심경의 일단을 적절하게 피력한다. 연시조의 모범을 보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겠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들에는 빗줄기 내려 옷깃 푸는 냇바람에, 청하한 시를 읊조렸더니 구절구절이 한가롭다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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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3권 3부 外 참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87)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학자이다. 유성룡, 김성일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簾捲: 주렴을 걷다. 野: 들. 經雨: 지나가는 빗줄기. 襟開: 옷깃을 풀다. 溪: 시내. 滿風: 바람이 가득하다. 곧 ‘시원한 바람’을 뜻함 // 淸吟: 청아하는 시 한 수를 읊다. 無一事: 일없다. 句句: 구절구절. 是: 이처럼. 閑功: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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