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으로 듣는 새소리
공으로 듣는 새소리
  • 문틈 시인
  • 승인 2018.05.1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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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숲길을 걷는다. 녹음이 우거진 푸른 숲길은 마치 나무그늘로 된 터널 같다. 멀리서 가까이서 온갖 새소리들이 들린다. 산꿩의 울음소리, 나무등걸을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 그리고 가슴 아련한 뻐꾹새 울음소리. 이 산 저 산에서 뽐내듯 새소리들이 다투어 소리한다.

이 화창한 봄날에 새들이 제가끔 독특한 소리로 울어대는 것은 딱 한 가지 목적이 있다. 구애(求愛), 애타게 짝을 찾는 소리다. 알을 낳아 어서 자손을 낳자는 것이다. 숲의 새들만 구애로 바쁜 것이 아니다. 자세히 바라보면 피어난 모든 꽃들도 또한 마찬가지다.

꽃들은 저마다 꿀과 향기를 마련하고 벌과 나비들을 부르거나 솔처럼 송화가루를 날려 역시 자손 번식 길에 나선다. 화려한 색깔, 아리따운 차림, 달콤한 향기. 이것들은 오직 그 목적을 향한 차림새들이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은 인간의 귀 즐거우라고 한 가락 뽑는 것이 아니라 짝을 유혹하는 소리다.

봄은 자손 번식의 질서를 위해 새들과 꽃들, 짐승들이 신방을 마련하는 계절이다. 모든 동식물들이 그러하다. 자연은 들여다볼수록 후대의 번성에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 그것 말고도 새들과 나무들, 풀들이 따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확실하며 흔들림이 없다.

사람은 봄이 벌이고 있는 이런 신방 꾸미기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엄연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들, 동물들, 나무들, 풀들이 봄 잔치를 한 결과로 나온 부산물을 인간이 취하기 때문이다.

자칫 이 대목에서 자연의 이런 자손 번식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으로 오해할까 싶다.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자연은 인간이라는 종이 없다고 해도 자연은 잘 굴러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인간은 어떤 점에서 이 자연에 초대받은 손님 같다.

자연의 질서랄까 이치랄까, 이것은 한 마디로 자손을 번식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한 ‘생육하고 번성하라’가 자연이 요구하는 명령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 성장하고 자손을 남기고 죽는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인간이란 종이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새들과 짐승들과 나무들과 꽃들과 그것들보다 특별히 존엄한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이 모든 생명이 함께 자연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이 들어선다. 자연이 어떤 생명을 열등한 존재, 업신여김 받는 존재로 세상에 내어 놓았다고 믿기 어렵다. 인간이라고 해서 그것들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저 낭랑한 소리를 짖어대는 새들과 화려한 꽃들과 다른 유일한 차이는 지능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저것들도 나름대로 의식하고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본다. 여기서 그 까닭을 논할 겨를은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 생명체로서 완벽한 존재다.

게다가 그들은 대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을 굴리는 네트워크에 기여하고 있다. 어느 것 한 가지도 없어져서 좋은 것은 없다. 한 포기 풀이 필요 없다면 만상이 다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의 모든 생명들이 존귀한 것들이다.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봄은 자비심을 가지고 겨우내 새날을 기다려온 싹들을 밀어 올린다. 따스한 햇볕이 그 잎들을 어루만진다. 하늘은 비를 뿌려 목이 마른 뿌리들을 적셔준다. 잎들이 초록으로 세상을 덮으면 동물들은 잎들을 뜯어먹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초록 세상은 일파만파로 짐승과 새와 인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그물 같은 먹이사슬을 구성한다.

천지가 협력하여 진행하는 이 대공사에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아니, 인간은 자주 대공사에 훼방을 놓거나 해를 끼친다. 만일,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서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철학자들은 그렇다면 우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건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그런 사고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우주적인 관점에서 지구를 본다면 오히려 지구의 본 모습을 회복할 것이다. 인간 없는 자연 천국이 될 것이다.

초록이 무성한 봄날 숲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가 자연의 한 구성원임을 깨닫는다. 눈에 보이는 만상의 위에서가 아니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존재로서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자연에서 결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의 시 중에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라는 싯귀는 하늘과 땅이 내는 모든 생명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노래한다. 새들아, 나무들아, 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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