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4) 압구정(鴨鷗亭)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4) 압구정(鴨鷗亭)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5.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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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 한 백년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시인이 살았던 당시의 압구정과 현대에 개발된 압구정을 상상으로 비교해 보라. 공간은 그대론데 시간이 흐르면서 옛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변화를 실감한다. ‘잠실’도, ‘광나루’도 마찬 가지겠거늘…

시인이 살았던 당시만 해도 정자부근에는 다소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었음을 넌지시 알게 된다. 압구정이 한명회가 온갖 영화를 누릴 때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였음을 회고한 다음에 백년도 못가는 인간도 그렇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鴨鷗亭(압구정) / 고봉 기대승

거친 숲 엉킨 풀 높은 언덕 뒤 덮고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 알겠는데

백년도 못사는 인생 안개풍경 머리 드네.

荒榛蔓草蔽高丘      緬想當時辦勝遊

황진만초폐고구      면상당시판승유

人事百年能幾許      滿江煙景入搔頭

인사백년능기허      만강연경입소두

 

인간의 생 한 백년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狎鷗亭)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에 가득 뒤덮여서 / 아득한 당시를 생각해 보니 명승지임을 이제야 알겠구먼 // 인간의 생 한 백년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 강에 가득한 안개 풍경은 번잡함이 머리에 드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압구정에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여 문학에 이름을 떨쳤다. 독학으로 고금에 통달하여 31세 때 [주자대전]을 발췌하여 편찬할 만큼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특히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과 12년간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을 주제로 논란을 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유학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시인은 압구정에 올라 거친 풀을 바라보면서 시상을 떠올린다. 압구정은 세조 때에 갖은 영화를 누렸던 칠삭동이 한명회(韓明澮)의 호다. 시인보다 150여년이 앞선 정객 압구정을 떠올리며 당시의 명승지였음을 회상한다. 아득한 당시를 생각해 보니 명승지임을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한 백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안개 풍경이 번잡한 인간사가 머리를 든다고 서회한다.

화자는 분명 단종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그를 은근하게 질타하면서 저주하는데 인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강에 가득한 안개 풍경은 번잡함이 머리에 들어온다고 했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을 안개풍경에 빗대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엉긴 풀 언덕 가득 명승지임을 알겠거니, 인간 생명 백년이 얼마던가 안개 풍경에 머리 드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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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1549년(명종 4)에 비로소 과거에 응시하여 생원과 진사 양과에 합격하며 약관에 명성을 사림에 드러냈다. 문장은 장중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이황의 문인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荒榛: 거친 잡목 숲. 蔓草: 엉킨 풀. 蔽: 뒤덮다. 가리다. 高丘: 높은 언덕. 緬想: 아득히 생각하다. 當時: 당시. 辦勝遊: 명승지임을 알다. // 人事: 인간세상. 百年: 백년. 能幾許: 얼마나 되겠는가. 滿江: 강에 가득하다. 煙景: 안개 풍경. 入搔頭: 번잡함이 머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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