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수기, “부끄럽다”는 일본인 심경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수기, “부끄럽다”는 일본인 심경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8.05.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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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읽은 일본인 대학생, “70년여 전 이런 일을 저질렀다니…”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의 수기를 읽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 일본 대학생들의 감상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립 아이치교육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나야 마사히로(64) 교수는 지난해 가을 ‘평화학 입문’, ‘독일문화’, ‘코리언의 과거와 현재’ 등 3개 과목 수강생들에게, 일제 강제 징용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이상업 저. 소명출판)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 바 있다.

대학생들이 책을 읽고 남긴 94편의 감상문 속에는 그동안 몰랐던 일제 강제 징용 실태를 처음 접한 엇갈리는 심경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상업 어르신은 1928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불과 만 열다섯 나이에 후쿠오카에 위치한 미쓰비시광업 소속 가미야마다 탄광에 끌려가야 했다.

지하 1천5백 미터 막장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린 그는 세 번의 탈출 시도 끝에 가까스로 그 곳을 빠져 나온 뒤, 사지나 다름없던 그 곳에서의 참상을 뒷날 직접 글로 남긴 바 있다.

70년여 전 한 강제 징용 피해자가 겪은 체험 수기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본 대학생들에게 ‘놀라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아이치교육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다케우치 미쿠씨는 “지금 일본과 한국의 관계와는 너무 달라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며 “일본은 당시 조선인에게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요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과 교원양성과정을 밟고 있는 4학년 고다마 유다이씨는 “책을 읽고 전쟁의 공포를 느꼈다”며 “15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징용령을 받다니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일을 일본인이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공포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슬퍼진다”고 말했다.

충격적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 듯, 일부 의구심을 갖는 학생도 없지 않았다.

교육지원과정 심리전공인 2학년 수기우라 유미씨는 “특히 놀랐던 것은 당시 15세였던 소년이 강제 징용을 당했다는 사실이다”며 “하루 15시간에 걸친 중노동, 부족한 식사, 열악한 노동환경, 사소한 일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등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해 본 가해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믿기 어렵다. 복잡한 심경이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에게도 뭔가 있지 않은지, 역으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당한 일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다”며 혼란스러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일제 강제 징용에 대한 참상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충격과 함께, 그 원인을 일본 교육의 문제에서 찾는 학생의 시선도 눈에 띈다.

“70년 전에 정말로 일어났던 얘기라고는 믿기 어려웠다”는 가야하라 유이(4학년)씨는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역사교육에서는 일본은 피해자였고, 전쟁의 비극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일본도 소름끼치는 가해자가 아니냐?”며 “자국이 저지른 일을 감추고 후세에게 전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허탈한 심정을 밝혔다.

학생들 중에는 과거의 일 뿐 아니라, 현재의 재일 조선인 차별 문제와 연계해 보는 시각도 있었다.

고니시 마유(2학년 교육지원과정 심리전공)씨는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 강요는 같은 민족이 아닌데도 일본인이 되라고 하는 강제 동화정책이었고, 이는 현재 재일 조선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헤이트 스피치(민족 혐오 발언)가 없어지지 않고, 일본인과 동일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등 차별의식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역사교육의 중점은 패전국 입장을 강조하며 세계 유일의 피폭 국임을 강조하는데 있다”며 “초등학교에서부터 일본의 과오를 배우고 타민족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는 부분이 현재의 일본 교육에서는 빠져 있다”고 쓴 소리를 남겼다.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나야 마사히로 교수는 “성적 평가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어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자신의 느낌을 쓴 것이었다”며 “일제의 잘못한 고발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반한 감정이 표현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학생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은 얘기여서 그런지 이 책을 통해 일본이 가해국이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는 평이 중론이었다”며 “장래 교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손잡고 파트너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글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제 강제 징용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 2017년 상반기 교양부문 ‘세종도서’로 선정됐으며, 수기를 남긴 이상업 어르신은 일본어 번역 출간 직후인 지난해 5월 26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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