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8)
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8)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4.16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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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병진소」를 올리다 (2)

권신 이이첨을 비판한 윤선도는 광해군에게 직언을 한다.

“성상께서는 깊은 궁궐에 계셔서 그가 이토록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만약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으신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밝혀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근래의 재변(災變)과 국방 소홀이 임금의 총애를 독차지한 이이첨의 전횡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근래에 태양의 이변이 거듭 나타나고 지진이 누차 발생하였으며 겨울 안개가 사방에 가득했었으니, 이는 모두 재변 가운데에서도 큰 재변이었습니다. 신은 이런 재변이 오늘날의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재변은 까닭 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어찌 그 이유가 없겠습니까.

오늘날 변방의 방비가 허술한 점이 많아 나라의 형세가 매우 위태롭고 아래 백성들이 원망을 품어 방본(邦本)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심이 매우 투박해져서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풍속이 아주 무너져 염치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이이첨이 임금의 총애를 저토록 오로지 차지하고 있고 나라의 정치를 저토록 오래도록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변이 저러하고 나라의 형세가 저러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저러하고 풍속이 저러하고 선비들의 습속이 저러하니, 이이첨이 어진자입니까, 어질지 못한 자입니까?

지금 이이첨은 권세를 독차지하고 멋대로 휘두르고 말류의 폐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이첨의 전횡 사례로 과거 시험 부정을 제시한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또한 감히 변명을 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통분하게 생각합니다. 글자를 표시하여 서로 호응하였다거나 답안지에 표식을 하였다거나 시험장에서 감독관과 내통하였다거나 시험의 제목을 미리 누출하였다는 등의 말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올해의 별시전시(殿試)의 급제자 가운데에는 고관(考官)의 형제와 아들과 조카 및 그들의 족속으로서 참가한 자가 1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전시가 비록 상피하는 법규가 없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어찌 한 과방 안에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합격한 자가 이렇게 많은 때가 있었겠습니까.

이윽고 윤선도는 시험 부정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진사 민심은 바로 신의 아비와 같이 급제한 사람의 아들인데, 신의 『사문유취(事文類聚)』를 빌려보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전체를 빌려주고 싶지가 않아서 몇째 권을 보고자 하는지를 물었더니, 청명절(淸明節)이 들어 있는 권이었습니다. 그 권이 마침 신의 서실(書室)에 있었기 때문에 갖다가 주었습니다.

민심이 말하기를 ‘다른 권도 보고 싶다고 하기에 그 권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민심이 말하기를 ‘등촉부(燈燭部)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등촉부가 들어 있는 권이 없어서 못 빌려주었고, 결국 민심은 청명절이 들어있는 권만 빌려갔습니다.

그런데 뒷날 반궁의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유류화(楡柳火)’라는 제목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문유취』에서 찾아보니 이것은 청명절에 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비로소 이상하게 여기며 마음속으로 ‘성상께서 친림하시어 임금의 위엄이 지척에 있는데도 감히 미리 유출했던 제목을 출제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이첨이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황당하다. 임금이 직접 출제한 시험문제가 사전 유출되다니.

이어지는 상소는 요즘 권력자들의 채용비리를 보는 듯하다.

“이이첨의 네 아들이 모두 미리 시험 문제를 알아내거나 차작(借作)을 하여 과거에 오른 일에 대해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 네 아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재주와 명망이 없는데도 잇따라 장원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혹은 전혀 문장을 짓는 실력이 없는데도 과거에 너무 쉽게 오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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