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0) 산거(山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0) 산거(山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4.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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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골짜기에 살고 있음을 알겠거니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즈음 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 만큼 산은 맑을 공기와 함께 세속의 어려움을 잊게 해준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다. 오르는 즐거움과 정복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산이다. 오르며 땀 흐리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내려오면서 즐기는 쾌감까지 주는 선물이 산이다. 산을 찾는 사람도, 산에 사는 사람도 쉽게 맛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산에 살면서 세속을 잊고 살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山居(산거) / 청련 이후백
봄 가도 꽃은 피고 비 갰으나 골에 그늘
한낮에도 소쩍새의 슬픈 소리 처량한데
이몸이 골짝 사는 것 살고 있음 알겠구나.
春去花猶在    天晴谷自深
춘거화유재     천청곡자심

杜鵑在白晝    始覺卜居深
두견재백주     시각복거심

비로소 골짜기에 살고 있음을 알겠거니(山居)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봄은 이미 갔지만은 꽃은 아직도 곱게 피어 있고 / 하늘은 개어있어도 골짜기는 늘 그늘져 있구나 // 소쩍새는 한낮에도 저리도 구슬프게 울고 있으니 / 비로소 내가 골짜기에 살고 있음을 알겠거니]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산에서 한가롭게 사는 삶]로 번역된다. 흔히 산수(山水)라고 했다. 산은 맑은 공기는 물론 건강을 지켜주는 묘약으로 알려진다는 뜻이겠다. 한양을 떠나 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했듯이 산과 물이 있는 농촌 고향에 살면서 서정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건강을 지키는 비방쯤은 아니었을까 본다. 부모를 섬기고 선영(先塋)과 고향을 지키려는 깊은 뜻도 담겨있으리라.

시인은 깊은 산골짜기에는 늦봄에도 꽃의 자태는 완연하고, 꽃이 진 뒤 온 세상이 제 것인 양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하늘은 맑게 개었지만 그늘져 있으니 산 속에 피어있는 꽃 그림자 때문이라는 시상(詩想)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위 시의 시간적인 배경은 이런 시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화자는 자연에 취해 그걸 깜박 잊고 있던 모양이다. 소쩍새는 한낮에도 저리도 구슬프게 울고 있으니, 비로소 내가 골짜기에 살고 있음을 알겠거니 라고 했다.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깊은 골짜기에 들어왔음을 알게 되었다는 자연에 흠뻑 도취한 서정성을 맛보게 되는 시간차를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봄은 갔으나 꽃은 곱게 하늘 개고 골짝 넉넉, 소쩍새 슬피 우니 골짝임을 알겠거니’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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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35년(중종 30) 장원하고 서울로 올라와 이의건, 최경창, 백광훈 등을 제자로 두면서 후진을 양성했다. 1555년(명종 10) 급제하여 승정원주서·사간원정언·병조좌랑·사인·홍문관전한 등을 역임했으며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했다.

【한자와 어구】
春去: 봄이 가다, 花猶在: 꽃은 오히려 그곳에 있다. 天晴: 하늘이 많게 개다. 谷: 산 골짜기. 自深: 자연적으로 깊다. 저절로 그렇게 깊다. // 杜鵑在: 소쩍새(두견)가 있다. 두견이 울고 있다, 白晝: 한낮. 백주에도, 始: 비로소, 覺卜: 알겠다. 깨닫겠다. 居深: (내가) 깊은 산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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