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이 지역 살릴까
분권이 지역 살릴까
  • 문틈/시인
  • 승인 2018.04.1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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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을 못 잡아서 속을 끓이는 듯하다. 그럴 것이 누르면 누를수록 값이 다락같이 오르기만 하니 골머리가 아프게도 생겼다. 예로부터 ‘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시장은 대책을 내놓는다.’는 말이 있다. 누른다고 해서 눌리지 않는 곳이 강남인가도 싶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남이 불패면 나도 불패다.’고 주먹을 쥐었을까. 그랬지만 결국 강남 불패로 끝났다. 사실 강남 아파트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배가 살살 아프다. 84평방미터 아파트 한 채에 20억원을 웃돌고 있다니 뭔 놈의 세상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이 서민 아파트 한 채 값이란 말이냐,

헬스센터에 갔다가 우연히 고교동창생을 만났다. 짧은 수다를 떠는 중에 그가 말했다. ‘강남에 산 아파트가 재건축하게 되었는데 부동산에서 24억원에 팔라고 조른다’고 했다. 부러 내 기죽(지도 않지만)으라고 그런 말을 할 친구는 아니지만 듣는 순간 ‘뭔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네.’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생 일해서 돈을 모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집을 샀는데 거부가 되었다는 우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현실은 우화가 아니다. 공정한 사회라면 이런 우연이나 요행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정이 중심에 자리 잡는 사회라야 하지 않을까.

강남 불패는 정책 실패의 우화다. 꿀단지를 강남에만 잔뜩 놓아두었으니 전국의 개미가 몰려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강남 불패를 깨려면 강남에 있는 꿀단지를 전국 각지에 흩어놓으면 된다.

가령 내 계획이라면 이렇다. 전국 5대 광역도시에 서울대병원 수준의 대형병원을 세운다. 서울대 캠퍼스를 단과대별로 전국으로 흩어놓는다. 당연히 신입생은 지역별 할당제다. 이 두 가지만 실행해도 각 광역시로 돈 있는 노령세대와 학부모들이 귀향할 것이고, 대학을 가기 위해 굳이 ‘인 서울’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구분산 정책을 실행하지 않고는 꿈속에서도 강남으로 한 걸음씩 가는 개미 행렬을 못 말릴 것이다. 현재 서울에 몰려 있는 꿀단지를 전국으로 분산시키라는 말이다.

나주혁신도시에 몇 개 공공기관과 기업이 옮겨오면서 상전벽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공기관만으로는 턱없다. 국가의 인프라에 준한 덩치 큰 기관이나 교육기관, 병원, 공장, 창업 둥지가 전국으로 산개되어야 인구 분산과 지역발전이 진짜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진정한 ‘분권’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말이 아직도 살아 있으니 서울은 늘 집이 모자란다. 서울에서도 강남은 기회의 노른자들만 다 모여 있다. 사람들이 기회가 많은 강남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남을 탓하기에 앞서 한국의 실상은 서울공화국이다. 모든 것들의 중심이 서울에 있다. 오죽했으면 그 옛날에 다산 정약용 선생도 아들에게 서울로 가라 했을까. 요즘 분권 홍보가 활발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도 정부가 뿌린 분권 홍보물이 잔뜩 쌓여 있다. 분권이 좋다는 것이다.

솔직히 분권이 왜 좋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고, 서울의 힘을 지역으로 흩어놓는 정책으로서 분권이라면 찬성이다. 가령 인구절벽 문제만 해도 지역에서는 복지, 육아, 의료, 대학, 취업, 주거 문제가 열등하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본다. 심장만 뛰고 팔다리가 성하지 못하다면 그 사람의 건강이 담보되겠는가 말이다.

선거전략으로서 분권이 아니라 국민의 복지 차원에서 지역과 서울이 평등한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야 진정한 분권이 이루어질 터이다. 표현도 그렇다. ‘지방 분권’이라는 표현은 귀에 거슬린다. 서울이 중앙이고 나머지는 변방이라는 뜻인데, 말이라도 서울과 동등한 ‘지역 분권’이라고 해야 옳다.

어쨌거나 강남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한 지역에 먹거리, 볼거리, 일자리, 좋은 학군이 몰려 있을 때 어떤 불균형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것을 고치는 방안으로 강남 집값에 주먹을 들이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핵심들을 지역에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광주를 언필칭 ‘문화수도’라고 해놓고 실상은 그런가.

서울에 가야만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명문 대학에 갈 수 있고, 스펙을 쌓을 수 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에서 ‘강남 현상’은 일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서울 타령을 하지 않아도 지역에서 얼마든지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진정한 분권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소이다.

일본의 경우 직장 은퇴 세대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다. 은퇴 세대를 지역으로 유인하는 가장 큰 요인은 첫째가 의료 기관이다. 현재 전국의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린다.

국가적 차원에서 분권이 지역 발전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혁신이 아니라면 오히려 분권은 지역 간의 격차를 더 벌리고, 서울 쏠림을 촉진할 수도 있다. 서울의 권력을 지역들에 배분하는 차원에서 들여다보자는 말이다. 그런 혁신차원이 아니라면 강남은 영원히 강남으로 남아 국민들에게 소외감을 선물할 것이다.

강남은 서울이 낳은 것이다. 서울을 지역에 나누어주는 분권이 강남현상을 바로잡는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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