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바람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바람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8.04.09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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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 아침, 4.3이후의 삶을 설명하는 말 가운데 그 「황량한 길을 걷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4.3의 역사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 황량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원통함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삶이 어찌 황량함에 그칠 수 있었겠는가를 곱씹어 본다.

해방이 되어 이제 새나라 건설에 들떠있는 20만 섬사람 가운데 3만 여의 군중이 3.1절을 경축하는 가운데 군정 경찰의 총격으로 6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것이 시작이고 단서가 되어 결국 3만에서 7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살육되었고, 그들은 빨갱이 처단으로 정당화되었다. 이후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 되었다.

이러한 비극을 막아보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은 미약했다. 현지 군 연대장 김익열과 무장대 대장 김달삼(본명 김덕구) 사이에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협상이 이뤄졌으나, 경찰의 ‘오라리 조작’ 사건으로 협상은 깨지고 김익열은 해임되고 말았다. 그 후임으로 온 박진경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전 도민을 전부 몰살해도 좋다고 호언하다 동료 군인들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당시 서울신문(1948년 9월 25일자)은 박진경 암살의 문상길 중위의 마지막을 소개하고 있다. “22살의 나이를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 세상으로 떠나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 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한국 국민의 군대가 되어 주십시오”란 말을 마지막으로 총살당하였다.

제주 4.3과 관련된 숱한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강경진압을 명령한 이승만과 조병옥, 잔혹 진압을 자행한 송요찬과 서북청년단, 도지사 유해진, 군정장관 딘 소장이 있는가 하면 협상수습을 주장하며 조병옥에게 멱살잡이를 당한 김익열이 있고,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남에 의해 해방되어서 이런 꼴을 당한다고 오열하는 민정장관 안재홍이 있는가 하면, 군정 검찰총장 이인은 사태의 근본 원인을 관공리들의 부패에서 찾았고, 그러면서 ‘고름이 제대로 든 것을 좌익계열에서 바늘로 이것을 터뜨린 것이 제주도 사태의 진상’이라고 진단했다.

3.1절 집회 후 경찰의 발포에 항의하기 위한 제주도 전체의 총파업에 따른 자발적 철시가 이루어 졌다. 도지사 박경훈은 항의성 사직서를 제출했고 「도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해방된 오늘 아직도 완전자주독립을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오는 앞날 우리의 통일민주독립을 위할 것”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통일민주독립은 한민족 모두의 당위였고 해방 조국에 임하는 나라 사랑의 책무였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사람들은 분단과 반 분단으로 나뉘었다. 분단세력은 단독정부 수립을 서둘렀고 반 분단세력은 남북협상에 최후 기대를 걸었지만, 북한의 주류도 남한의 주도세력과 마찬가지로 이미 정부수립에 나아가고 있었다. 남북의 주도세력은 각각 미국과 소련이라는 후견국을 배경 삼아 자신들의 주도권을 관철해가고 있었고 정부수립을 위한 조급증에 빠져있었다. 그러한 조급증은 그들의 후견국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기획과 실천은 한국인들의 삶과 생존을 파괴하고 분해하였다.

삶이란 나의 삶이자,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삶으로 살아왔던 한반도는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져갈 공간인데,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터전에 대한 권력을 비정통적, 비민주적 세력들이 폭력으로, 더구나 외세를 뒷배 삼는 집단들이 장악해 가고 있었는데. 그들의 정치적 행위는 우리의 삶을 제약하고 훼손하고 멸절시키는 짓들이었다. 그들도 사람이고 한국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두려워져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려한다.

그런데 시인 박노해는 그의 시 「다시」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설파한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희망이다...」

박노해는 1985년 서노련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하다 1989년 사노맹 결성을 주도한 사람으로 본명은 박기평으로 함평 출신인데 노동해방을 염원한 나머지 필명을 ‘노해’로 삼을 정도였다.

희망도 절망도 사람에서 비롯되는데, 우리가 생존하고 생존해가야 하는데 절망을 근거 삼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붙드는데, 그냥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좋은 사람은 분명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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