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9) 춘일계상(春日溪上)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9) 춘일계상(春日溪上)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4.05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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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풀의 싹트는 모양이 더더욱 어여뻐라

매서운 겨울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라고 말한다. 살을 에는 추위에 두툼한 옷 한 벌은 봄옷으로 갈아입기 위한 전단계의 준비겠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만고의 진리고 순환의 원리다. 그래서 사계절이 있고, 음양이 있고, 오행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한 큰 스승이었지만 봄을 맞이하는 시내 위에서 이런 원리쯤을 구상하지 않았나 생각되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日溪上(춘일계상) / 퇴계 이황

눈 녹고 얼음 풀려 버들가지 휘날리고
병중에 와서 보니 봄의 흥취 넉넉한데
꽃답게 싹트는 모양 어찌 저리 예쁠까.

雪消氷泮淥生溪      淡淡和風颺柳堤
설소빙반록생계      담담화풍양류제
病起來看幽興足      更憐芳草欲抽荑
병기래간유흥족      경련방초욕추이

꽃다운 풀의 싹트는 모양이 더더욱 어여뻐라(春日溪上)로 푸는 자연시의 칠언절구다. 작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눈은 녹고 얼음은 풀려 푸른 물이 흐르고 있는데 /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가 휘 날린다네 // 병중에 와서 보았더니 그윽한 흥이 넉넉하기만 하고 / 꽃다운 풀의 싹트는 모양이 더더욱 어여뻐라]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봄날 시내 위에서]로 번역된다. 이 시는 시인이 1561년 봄에 지은 시로 알려진다. 이 시 바로 앞에 실려 있는 구절에는 “올봄 날이 추워 눈은 허공에 가득하고 폭풍이 휘몰아쳐 산은 무너질 듯하네”라고 했다. 이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그 해 겨울은 봄이 되도록 추위가 매서웠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시에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맞이한 봄날의 정취를 진솔하게 묘사한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봄의 풍광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지만, 얼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파릇한 새싹은 우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임을 노래한다.

화자는 계절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봄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보여준다. 병중에 와서 보니 그윽한 흥이 넉넉하기만 하고, 꽃다운 풀의 싹트는 모양이 더더욱 어여쁘다고 했다. 입춘이 막 지났으니, 곧 봄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꽃이 필 것이니 봄이 되면 꽃다운 풀들이 ‘쏘옥’ 얼굴을 내밀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얼음 풀려 물 흐르고 버들가지 휘날리네, 병중에도 흥이 넉넉 싹튼 모양 예쁘구나’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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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유학자이다. 1528년(중종 23) 진사에 합격하고, 1533년(중종 28) 성균관에 들어가 이듬해 문과에 급제, 정자·박사·전적·호조 좌랑을 거쳐, 1539년(중종 34) 홍문관 수찬·성균관 사성을 역임하였다.

【한자와 어구】

雪消: 눈이 녹다. 氷泮: 얼음이 풀리다. 淥: 푸르다. 生溪: 시냇물이 흐르다. 淡淡: 살랑살랑. 의태어. 和風: 화한 바람. 颺: 휘날리다. 柳堤: 제방둑 버들가지. // 病起: 병중에 일어나다. 來看: 와서 보다. 幽興: 그윽한 흥. 足: 넉넉하다. 憐: 어여쁘다. 芳草: 꽃다운 풀. 欲抽荑 싹트고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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