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6)
길 위의 호남 선비,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6)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4.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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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를 점령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했고 신립 장군마저 충주 탄금대에서 패배하자, 선조는 4월 30일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에 도성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경복궁 · 창덕궁과 노비문서를 보관한 장예원 등이 백성들에 의해 불탔다.

5월 3일에 왜군은 한성에 무혈 입성했다.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6세인 윤선도도 부친 윤유심을 따라 북쪽으로 피난 갔을 것이다.

1594년에 윤선도는 8세의 나이로 작은 아버지 윤유기에게 입양되어 해남윤씨 대종이 되었고, 1597년(11세)에는 북한산 산사에서 공부했다. 절에서 수륙대회를 크게 열어 많은 사람들이 구경했는데 윤선도는 홀로 단정히 앉아서 독서에 열중했다.

14세에는 부친 윤유기가 안변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수행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시 3수를 지었다. ‘국도에서 머리를 돌려(自國島廻舟)’, ‘임단 가는 길에’, ‘안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읊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국도에서 머리를 돌려’라는 오언절구 시를 읽어보자. 이 시는 『고산 유고』 맨 첫머리에 실려 있다. 1)

날 저물자 뱃머리 돌려 돌아오는데

반은 취하고 반은 깬 듯하네.

외기러기 홀로 울며 날아가는데

지는 해 산 너머 산으로 기울어가네.

廻舟日暮還

半醉半醒間

一鴈鳴猶去

斜陽山外山

국도(國島)는 안변도호부 동쪽 60리에 있는 섬이다. 저물어가는 황혼 무렵 기러기가 저 멀리 날아가고 산은 첩첩이 쌓여 있다. 시중유화(詩中有畵)이다. 습작 치고는 절제미가 느껴진다.

17세에 윤선도는 남원윤씨와 결혼했다. 판서 윤돈의 딸이었다. 이 해에 그는 진사 초시에 합격했다. 그는 공부에 정진했는데 이 시기에 지은 ‘연적을 노래함’이란 시가 있다.

모양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가 구천에서 떨어진 듯

주둥이는 붕새 부리가 파도가에서 솟아난 듯

가슴속 운몽택은 오직 벼루만이 알겠으니

함께 공부한 여러 해에 뜻이 더욱 굳어지네.

20세인 1606년에 운선도는 『소학(小學)』을 접하고 평생의 필독서로 삼았다. 소학은 말 그대로 초보자를 위한 유학의 지침을 담은 경전이다.

그런데 이 책은 지치주의자 조광조가 희생을 당한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로 금서(禁書)가 되어 사람들이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도 흔치 않았다. 그런데 윤선도는 옛날 서책들을 점검하다가 소학을 찾았는데 이 책을 수 백 번 읽었다.

윤선도의 나이 22세(1608년)에 양어머니 능성구씨가 별세하고 23세에는 친어머니 순흥안씨가 세상을 떠났다. 두 어머니를 1년 사이에 잃은 것이다.

윤선도는 25세인 1611년(광해군 3년) 11월에 처음으로 해남에 있는 조상의 묘소 성묘 차 해남으로 내려갔다. 그는 해남으로 내려가면서 곳곳의 경치를 묘사한 7언 고시 122수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남귀기행(南歸紀行)이다.

첫머리가 “만력 기원 39년 (1611년) 음력 11월 7일에 멀리 부모님 계신 곳 그리며 남국으로 향하네”로 시작하는 기행 시는 서울에서 용인 · 공주 · 장성 · 해남에 이르기까지 여정이 세밀한 필치로 적혀 있다.

집 앞에 이르니 밤은 이미 깊어

문 밖에서 자던 새 놀라 푸드덕 거리고

작은 동생 종종걸음으로 문턱을 넘고

막내 누이와 친척들 비단 장막 걷고 반기네.

긴 여정을 마친 윤선도는 늦은 밤 고향에 도착해 가족들의 환대를 받았다. 「남귀기행」에 대하여 당대의 문장가 임숙영(1576∼1623)은 “필력이 웅건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는 작품”이 되리라고 평했다. 2)

1612년(광해군 4년) 가을에 윤선도는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했다. 임숙영은 윤선도가 장원(壯元)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험 고관(考官)들이 그에게 제이(第二)의 등급에 놓았으므로 논하는 자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3)

윤선도 원저 · 김대현 역주, 『고산유고』 책 표지

1) 윤선도 원저· 김대현 역주, 고산유고, 도서출판 정미문화, 2015, p 27

2) 고미숙 지음, 윤선도 평전, 한겨레출판, 2013, p 69

3) 광해군 시대는 권신 이이첨이 과거(科擧) 시험까지도 조작했다. 1616년 12월에 30세의 윤선도는 이이첨의 전횡을 질타하는 「병진소」를 올려 파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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