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8) 낙화암(洛花巖)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8) 낙화암(洛花巖)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3.29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천 궁녀의 넋인 양 곱게 피어 있구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찾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찬란했던 역사 보다는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역사가 그 때를 말해주고 있다. 어느 왕조 어느 시대나 흥망성쇠는 필연코 있었던 법. 이를 굳이 아니라고 숨길 수도 없다. 오늘의 우리도 돌아보며 그 때의 숨결을 듣는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고개를 휘저어 돌아보기도 한다. 부여를 찾아 시문을 남겼던 작품이 더러 있지만 삼천궁녀의 숨결을 꽃으로 비유하며 다르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洛花巖(낙화암) / 석벽 홍춘경

나라는 망했었고 산천도 변했지만

강위에 떠있는 달 오늘도 변함없고

낙화암 바위에 핀 꽃 삼천 궁녀 넋인가.

國破山河異昔時    獨留江月幾盈虧

국파산하이석시    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    風雨當年不盡吹

낙화암반화유재    풍우당년불진취

삼천 궁녀의 넋인 양 곱게 피어 있구나(落花巖)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1497∼154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백제란 나라는 망했고 산천까지도 많이 변했건만 / 저 강 위에 두웅실 떠 있는 달은 변함이 없구나 // 낙화암의 바위 틈엔 아직도 꽃이 피어 있고 / 바람과 비는 지금도 불기를 다하지 않는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낙화암을 다녀와서]로 번역된다. 시인의 성품이 강직하여 결코 권세에 굽히지 않았고, 또한 권세가의 집을 찾은 일도 없었다 한다. 낙화암은 백제의 마지막 서울이었던 부여 부소산에 있는 큰 바위다. 백제가 망할 때 삼천궁녀가 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기 때문에 이 바위를 낙화암(洛花巖)이라 했단다.

시인은 부여를 찾아 백제의 멸망을 떠 올린다. 백제란 나라는 망했고 산천까지도 많이 변했건만, 저 강 위에 두웅실 떠 있는 달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자연의 섭리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강 위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달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착상에서 시인의 신선한 문학적 상상력을 만난다. 낙화암의 틈새엔 아직도 꽃이 있다는 시상을 떠올린다. 이 꽃은 현재 피어있는 꽃이 아니다. 떨어진 꽃다운 삼천 궁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지금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화자의 상상에 의한 꽃이다. 과거와 현재(낙화암을 찾았던 당시)의 모든 것을 한 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드리운 달을 보며 망해버린 옛 백제를 회고하는 화자의 고뇌에 찬 회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백제 망해도 산천의구 둥실 뜬 달 변함없네, 낙화암 돌 꽃이 피고 바람과 비 다함 없네’ 라는 상상력이다.

================

작가는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1497∼154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를 거쳐,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저작·정자를 지내고, 1536년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사성·보덕·집의를 거쳐 예조참의에 올랐다. 그 뒤 좌승지·한성부우윤·이조참의를 지냈다.

【한자와 어구】

國破: 나라가 망하다. 山河: 산천. 異昔時: 엣적과 다르다. 獨: 홀로. 留江月: 강위에 떠있는 달. 幾盈虧: 몇 번이나 이지러지고 찼다. 곧 변함이 없다. // 落花巖: 낙화암 가에. 부여에 있음. 花猶在: 꽃은 아직도 있다. 風雨: 바람과 비. 當年: 금년에. 不盡吹: 다 불지 않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