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45) 2017광주공예명장 금정 김기표
남도의 멋을 찾아서(45) 2017광주공예명장 금정 김기표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8.03.2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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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터치가 돋보이는 서각의 세계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제작

“1000년이 넘은 목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죠. 나무가 겉보기엔 같아 보여도 목공예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각은 인쇄를 목적으로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거나, 각종 전통 건축물의 현판이나 현액 등으로 제작해 건물의 얼굴 역할을 한다.

보통 대중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서각작품으로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 문화유산으로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인 ‘팔만대장경’이 있다.

광주의 상징적인 공간인 5.18민주묘지에 가면 제일 처음으로 ‘민주의 문’을 만날 수 있다. 5.18민주묘지의 입구에 있는 ‘민주의 문’ 서각작품이 바로 금정 김기표 선생의 작품이다.

섬세함 지녀야하는 서각분야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매만지는 일이 취미였다는 금정 김기표(62)씨. 20살 무렵부터 나무를 만지는 것이 취미가 되면서 나무에 조각을 새겨보기도 하고, 부조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글씨를 잘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손으로 글씨를 잘 쓰는 것도 힘든 마당에 나무에 글씨를 새긴다는 것은 숙련된 기술과 섬세함을 지니지 않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정 김기표 선생은 우연한 기회에 전혀 다른 기법으로 하는 서각을 배우게 됐다. 나무를 밀어서 글자를 새기는 기법이 아닌 망치로 나무를 때려 뜨는 기법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공부하게 됐다.

“망치로 때려서 글자를 새기는 기법은 글 표현이 훨씬 좋습니다. 밀어서 작업을 할 때는 붓 끝의 터치를 살릴 수가 없는데 때려서 새기는 기법은 표현을 섬세하게 할 수 있지요”라고 한다.

다시 말해 밀어서 하는 기법은 글자를 그리는 느낌이라면, 때려서 하는 기법은 붓 터치를 살려 글자를 뜬다는 느낌을 준다.

증심사 대웅전 현판 등 다수 작품 제작

작업하는 나무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김기표 선생은 단연 ‘느티나무’를 가장 먼저 손에 꼽는다. 나무마다 오래된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나무는 모질게 커야 작품을 제작하는 재목으로써 문양, 강도, 색 등이 달라진다고 한다.

금정 김기표 선생은 “나무가 속성으로 크면 문양, 강도, 색이 훨씬 떨어진다”며 “참죽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을 사용하며, 나무의 무늬, 색을 살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서각을 하기 위해 서예, 조각, 회화 등을 익혀온 김기표 선생은 한국 남종화의 거장이자 운림산방 3대 주인 남농 허건 선생이 건립한 미술관의 현판을 제작하게 되면서 남농으로부터 ‘금정’이라는 호를 받게 됐다.

이후 90년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정부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조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금정은 광주시로부터 현판 제작 의뢰를 받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민주의 문’은 정치권, 재야의 인사 등이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찾는 첫 번째 관문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외에도 금정 선생의 작품은 가깝고, 다양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5.18민주묘지의 ‘민주의문, ’역사의문‘ 뿐만 아니라 증심사 ’대웅전‘ 현판, 태안사 전몰군경 위령탑 ’충의문‘과 ’호국관‘, 보성 서재필 박사 유적지의 ’개화문‘, 성륜사 현판, 담양 ’한국가사문학관‘ 현판 등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소목, 서예, 조각 등 여러 분야 배워 서각 응용

전남 담양공고 사거리에 있는 금정 김기표 선생의 작업실에는 1000년을 지내온 나무부터 500~600년 된 느티나무까지 다양한 재목을 볼 수 있다. 나무가 야생에서 그대로 자라온 듯한 결을 느낄 수 있는 재료부터 자연 그대로 구부러진 형태의 나무까지 재료 그 자체가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다.

김기표 선생은 갈라진 현판에 대한 수리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왜 갈라지게 될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조각과 목공예를 하면서 가구를 만드는 소목을 배워보기로 하고 화순 동복 중요무형문화재 송추만 선생에게 전통가구를 배우게 됐다”며 “그때 기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제작기법을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갈라지지 않도록 제작할 수 있게 됐다”고 자신했다.

우선 재료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보통 건조기간이 두께에 따라 다르지만 2~3년 정도는 자연건조로 1차 가공을 한 이후 뒤틀리고, 휘는 것을 대패질로 바로 잡아야 한다.

또 표면이 매끄러우면 부식이 빨리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섬세하고, 매끄럽게 마감, 도색을 해야 한다고 한다.

금정은 “서각의 경우 먹이 방부제 역할을 하면서 부식이 덜 되게 한다”며 적절한 재료와 각법, 다양한 착색 등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생전에 ‘서각의 교본’ 남기고 싶어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인 원로 서각가 철제 오옥진 선생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그는 서울국제미술대전 서각부문 특선을 비롯 민속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40여 년간 서각공예가의 길을 걸어온 금정 김기표 선생은 지난 2017광주공예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요즘 서각분야는 희소성이 있어 취미와 아마추어 작가로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전업으로 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배우려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배우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진짜 재능이 있다면 단순히 공방을 열 수 있는 수준까지가 아니라 기법까지 전수해주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40여년 서각공예의 길을 걸어온 금정 김기표 선생은 남은 시간동안 서각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전시회를 한 번 더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전에 꼭 서각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라고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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