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속되면...
선비가 속되면...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 승인 2018.03.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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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의도인(毅道人)’이 살다간 증심계곡에 봄물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람이 매섭고 하얀 눈이 오락가락 하더니 어느새 봄이 찾아와 버들강아지 피어나고 언덕엔 새순이 돋아났다. 쑥이며 냉이는 이미 파릇하고 조금 있으면 민들레도 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꽃샘바람에 장독이 깨진다고 외투 깃을 세웠겠지만 언제부턴지 모르게 그건 기우가 되어버렸다.

꽃샘의 설늙은이는 쉬엄쉬엄 지팡이를 짚어가며 춘설헌(春雪軒) 앞을 지나 증심사 삼거리에 이르면 물소리가 바람처럼 시원하다. 능선 위엔 진달래가 근육질 좋은 남성의 가슴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중머리재 건너 목장엔 염소 떼가 놀고 마을 사람들은 촉촉이 젖은 땅에 보섭질러 소를 몰아 뙈기밭이나 골짜기 다랑이 논을 갈아엎을 것이다. 황소도 신이 나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새봄이 되어 처음으로 논밭을 가는 것을 애벌갈이라고 부른다. 밭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으면 쟁기질도 남북으로 하지만 이런 밭에서는 먼저 동서로 몇 골을 갈아엎은 뒤 남북으로 갈아야 한다. 그래야만 밭곡식이 잘되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농사꾼의 깊은 속내를 백면서생의 짧은 식견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한 일손에 지혜가 깃들어야 풍성한 수확을 기약할 수가 있다.

우리의 선인들은 인생을 어렵게만 풀어가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밭 갈아 씨 뿌리고 부모 봉양하면서 자식을 길렀다. 형제간에 등을 기대면서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알고 살았다. 남새밭에 연한 푸성귀들이 자라면 그걸 뜯어다가 만든 겉절이로 부모님 입맛을 돋궈드렸고 제 몸의 털끝하나라도 다칠 새라 삼가고 또 삼가면서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이웃을 신뢰하고 정신적 깊이를 나누어 가지면서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도리로 알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다.

잗다란 이익에 얽매이면 삶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도인은 자연에서 정신을 기르는 사람이다. 좋은 인격을 다듬는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생애를 두고 이어가야 할 인간의 자세이다. 가르치고 배운다는 일 또한 정신을 기름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공맹은 입지(立志)와 항심(恒心)으로 후생을 일깨웠다. 이와는 다르게 장자(莊子)의 글에 보면 ‘문재유천하(聞在宥天下) 불문치천하(不聞治天下)’가 있다. 천하를 너그럽게 둬둔다는 말은 들었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재유’란 너그러운 태도로 모든 사람이 제 천성대로 자유롭게 살게 두면 세상은 저절로 되어간다는 뜻이다. 만물의 본성은 스스로 함에 있다. 미물이라도 권세를 가졌다고 해서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배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의제(毅齊) 선생이 생존해 계시던 70년대 중반쯤일까. 가끔 친지들의 내방을 받았는데 어느 날 부안에 계시던 지운 김철수(遲耘 金錣洙) 선생이 찾아오셨던가 보더라. 두 분은 작설(雀舌)차를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시다가 의제 선생이 이윽고 붓을 들어 화선지에 그림을 그렸다. 선생의 손끝에서 바람이 일고 섬광처럼 영감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바위틈에서 대나무가 쑥쑥 자라났다. 석죽도(石竹圖)! 봄바람에 초목이 싹트는 것처럼 의제는 바람이었다. 대나무는 맑은 기품을 머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흥에 젖게 하였다. 선생은 붓을 지운께 넘겼다. 매화꽃 환한 미소를 띠시며 지그시 바라보시던 선생은 한동안 눈을 감고 깊은 사념에 잠기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번개와도 같이 일필휘지하셨다.

可使食無肉 밥상에 고기가 없을 수는 있어도

不可居無竹 사는 곳에 대나무는 없을 수 없네.

無肉令人瘦 고기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

無竹令人俗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

人瘦尙可肥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士俗不可醫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는 법

傍人笑此言 옆 사람 이 말을 비웃으면서

似高還似癡 고상한 것 같으나 어리석다 말하지만

若對此君仍大嚼 대나무 앞에 두고 고기 실컷 먹는다면

世間那有楊州鶴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란 말 있었겠는가.

이 시는 의제 선생이 그린 그림에 지운 선생이 화제를 붙인 것이다. 시제는 양주학(楊州鶴)이다.

송나라 때의 문호 소동파(蘇東坡, 1037~ 1101년)의 시다. 왠지 속물화 되어가는 시대상을 보면서 다시 음미해 보고 싶은 시가 아닌가 싶다. 의제라는 도인과 우국지사인 지운 선생이 만나 한 분은 그림을 그리고, 또 한 분은 화제를 썼다. 지난날 두 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지식인의 책무는 과연 어떤 것일까 고민해 본다.

지운(1893~1986) 선생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국내와 노령, 대륙을 오가며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했고, 해방 이후엔 좌우 통합을 통한 민족국가수립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노년에 부안에 살면서 광주를 오고 갔으며 제주 서귀포에 사시던 소암 현중화 선생, 의제 허백련 선생과 가까이 지낸 어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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